[돋을새김-오종석] 고래가 춤추게 하자

입력 2014-11-18 02:50

대한민국 기업과 가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기업들의 실적은 추풍낙엽이다. 조금 살아나는 듯하던 부동산 경기는 다시 추락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내년까지 3년 연속 1%대에 머물 전망이다. 돈 있는 기업이나 사람 모두 지갑을 닫고 있다.

연말 보너스에 가슴 부풀어야 할 직장인들은 벌써부터 감원바람으로 불안감에 휩싸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직장인들은 바늘구멍 취업에 애를 태우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체감실업률은 10%가 넘었다. 설상가상 대기업들의 내년 신규인력 채용 규모는 더 줄어든다는 소식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심각성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지난 3분기 주요 기업 실적은 ‘어닝쇼크’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작년 3분기(10조1600억원)보다 59.7% 감소한 4조1000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이 5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1년 4분기(4조6700억원)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이다. 현대자동차도 작년 3분기(2조101억원)보다 영업이익이 18.0% 감소했다. SK그룹 주력사인 SK이노베이션은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은 5.9%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84.6% 감소했다. 당기순손실은 628억3600만원으로 같은 기간 적자로 전환했다. 더 큰 문제는 4분기에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양이 목줄 풀어줘라

이처럼 우리 대표 기업들 실적이 나빠지면서 관련 중소 협력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로자의 실질소득도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니 법인세가 잘 걷힐 리 없고 액수 자체도 크게 감소했다. 무상시리즈 등 국민복지에 쓰여야 할 정부재정은 직격탄을 받고 있다. 저성장, 저물가, 저고용이라는 ‘3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결국 기업, 근로자, 일반 서민 모두가 힘들고 팍팍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안이한 대책에 머무르고 있다. 정치권은 유권자 눈치만 보고 있다. 위축된 기업은 사내유보금이 쌓여가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위기관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언제부턴가 ‘돈 많이 번’ 기업이나 사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정서가 생겼고 불신이 싹텄다.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떠들썩하게 진행된 규제완화 끝장토론은 과연 얼마나 성과가 있었나.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기업과 17개 시도를 짝 지어 추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구축 프로젝트는 실질적인 내실이 있는가. 대기업도, 관련 벤처 중소기업도, 국민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고양이도 맘 놓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야 쥐를 잡는다. 목줄을 잡고 ‘몇 시부터 잡아라’, ‘몇 센티 이상 된 쥐만 잡아라’, ‘몇 마리만 잡아라’, ‘허락받고 잡아라’고 하면 효과가 있겠는가.

경제살리기 특별 사회봉사명령이라도

먼저 기업이 신바람 나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520조원 가까이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10대 그룹이 과감하게 돈을 쓰도록 해야 한다. 사내유보금에 과세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보다 스스로 투자하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이 투자에 나서면 관련 중소기업도 생동감이 흐르고, 근로자 월급도 늘어나고, 옷가게와 밥집도 잘된다.

SK CJ 효성 등 30대 그룹 중 10명 이상의 총수가 구속되거나 재판 중이다.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하니 이들 기업의 주요 투자 집행, 일자리 창출, 신성장동력 사업 육성 등은 한계에 부닥쳤다.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응당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처벌이 이들 기업의 경영 자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경제 활성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해당 기업과 근로자는 물론 정부나 국민도 손해다. 무조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따질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죗값을 받도록 하면서 ‘경제 살리기 특별 사회봉사명령’이라도 내리면 어떨까. 고래가 춤추게 하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지금은 쥐를 잡을 때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