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은 동물로 치면 카멜레온 같은 나무다. 6∼7월에 피는 꽃은 여러 조건에 따라 색깔이 다양하게 변한다. 크고 둥근 꽃은 일반적으로 토양에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하면 푸른빛이 압도한다. 또 개화 초기에는 흰색 등 옅은 색으로 피기 시작해 푸른빛이나 붉은빛을 띠다가 늦여름에 검푸르거나 검붉은 색으로 짙어진다. 게다가 이 꽃 속 한가운데의 진짜 꽃을 제외한 눈에 띄는 부분은 중성화라서 결실하지 못한 채 늦가을이 되도록 드라이플라워로 남아 있다. 꽃잎은 화려한 모습을 잃었지만, 수분이 다 날아가서 바스러질 것 같은 작은 꽃잎에 붉은 여운이 남는다.
늦가을 천리포 수목원을 찾았다. 단풍 행렬도 남도 끝자락으로 물러간 바닷가 수목원 초입에서 만난 수국의 마른 꽃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조심해야 한다. 수목원 해설을 맡은 최수진 홍보팀장은 “색깔과 모양을 수시로 바꾸는 수국의 꽃말은 ‘변심’입니다. 그래서 결혼식 꽃다발이나 부케에 수국을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매표소 옆 ‘지금 피어 있는 꽃(What’s in bloom)’ 현판에는 아름다운 열매나 꽃을 달고 있는 금주의 식물이 소개돼 있다. 최 팀장은 “지금 주목할 만한 것으로 가을에 꽃이 피도록 개량된 벚나무와 이맘때 꽃을 볼 수 있는 남미풍년화를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초록색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완도호랑가시나무, 새빨갛게 물드는 왜성화살나무 잎,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미국낙상홍 등이 소개돼 있다.
꽃도, 단풍도 별로 없는 시기에는 열매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낙상홍과 호랑가시나무가 빨간 열매를, 돈나무 태산목 화살나무는 주황색 열매를, 좀작살나무는 보라색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덜꿩나무 찔레나무 팥배나무 산사나무 등도 크고 작은 대로 탐스럽고 빨간 열매를 달고 새들을 유혹한다. 동물들은 겨울에 대비해 일반적으로 많이 먹고 많이 깨어 있으려고 하지만 식물들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털어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한편 결실에 힘을 쏟는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늦가을의 나무들
입력 2014-11-18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