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는 침례교단에 소속된 K목사입니다. 이용원 목사님 맞으시지요.”
이름이나 전화 속 목소리가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한참이나 대화를 하다가 그가 인천소년교도소에서 나의 신앙지도를 받아 대학예비고사에 합격했던 원생이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는 내가 인도한 부흥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공부에 매진, 출소해 침례교신학대학을 졸업해 목사가 된 경우였다. 한때 범죄조직에 몸담아 한국의 알카포네가 되겠다며 권총을 차고 다니던 그가 예수를 만나 새롭게 거듭난 것이다. 또 그의 뒤에는 그를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한 장로인 그의 부친이 있었다.
나는 아주 반가워하며 다음 주 강단에서 간증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와 만나 감격의 포옹을 한 뒤 내가 자신의 ‘영의 아버지’라며 정성어린 선물까지 준비해 왔다. 나 역시 보람이 컸다.
“여러분, 저는 인천소년교도소에 수감돼 불만과 반항의 시간을 보내다가 이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렇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무서운 죄수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니 첫째가 하나님의 은혜요 두 번째가 이용원 목사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어 참으로 감사했다.
뉴욕한빛교회에서 안정된 목회를 하던 어느 날, 내가 13년 목회했던 샌프란시스코교회에서 전화가 왔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해 분열되는 위기에 있으니 한번 와 설교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오랜만에 샌프란시스코 옛 목회지를 찾았다. 정말 가보니 교회 내부 갈등이 생겨 그대로 두면 교회가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교인들을 만나 인사하고 설교를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교인들은 12년 만에 온 나를 만나기 위해 100여명이나 집회에 참석했다.
“목사님이 다시 이 교회로 오신다면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성도들에게서 계속 이 말을 들었다. 나 역시 13년이나 목회를 한 교회라 애착이 컸다. 내가 목회하고 있는 뉴욕한빛교회는 이제 자리를 잡았고 내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목회자는 양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 사명을 다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환경적으로 물질적으론 뉴욕이 더 나았지만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나는 그들에게 “저도 이제 나이가 65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식으로 청빙서를 보내면 뉴욕을 떠나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금방 청빙서가 도착했다. 이제는 뉴욕한빛교회 당회와 성도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과제였다. 나는 분위기를 보아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제가 13년을 목회했던 교회가 지금 심한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저보고 다시 오면 회복될 수 있다고들 합니다. 여기는 성전 건축도 잘 끝났고 저 없어도 얼마든지 잘될 수 있으니 떠나가도록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이 말에 연세 많으신 성도들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어느 권사님은 자기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울었다고 했다. 13년 목회하던 샌프란시스코교회를 떠난 지 12년 만에 나는 다시 옛 교회로 부임했다. 그러니 내가 이 교회의 3대와 5대 목사가 된 셈이다.
내가 다시 샌프란시스코교회에 부임하자 친구인 오관진 목사가 “어떻게 13년이나 있던 교회에 그것도 65세가 되어 다시 또 오냐? 이런 일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놀라운 일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부임 후 1980년에 이어 두 번째 목회를 하며 계속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싸워 이겨야 했다. 그런데 교회는 나날이 단합되어 좋아지고 있었다.
나의 목회는 딴 것이 없다. 내가 먼저 섬기고 헌신하고 나누려 노력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바로 서서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을 제시해 주고 풍성한 꼴을 먹일 수 있도록 설교 준비와 영성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용원 (11) 목회자 사명은 양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
입력 2014-11-19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