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무대실험-인간, 기계, 공간’ 展] “무대는 오픈 플랫폼이자 하나의 실험실”

입력 2014-11-18 02:23
클라우디아 페렌 독일 데사우재단 이사장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순수미술과 산업미술의 차이를 두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이걸 극복하려는 게 바우하우스의 정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이었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총체극장(모형). 어떤 위치에서도 무대를 최적으로 관람하게 하려는 과학적 연구의 노력이 엿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작가 김영나씨의 ‘2분 13초 36 프레임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바우하우스의 무대디자인 교수였던 오스카 슐레머의 ‘3인조 발레인물 연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역사상 바우하우스가 존재한 기간은 겨우 15년이었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바이마르에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세운 조형학교인 바우하우스는 1924년 작센안할트주 데사우로 이전했고 나치 정권 하에서 베를린으로 쫓겨나 결국 33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통합한 총체적 예술을 추구한 바우하우스의 정신은 20세기 산업미술의 산파가 됐다. 현대미술의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 폴 클레 등이 이곳 교수를 지냈다. 바우하우스의 실험정신은 당시의 스승과 학생들의 작품 등 컬렉션을 보유한 데사우재단에 의해 전파되고 있다.

데사우재단의 클라우디아 페렌(41) 이사장을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만났다.

-재단에 대해 설명해 달라.

“연방정부와 데사우시의 지원을 받아 20년 전 설립됐다. 바우하우스 유물 보존과 아카데미 운영,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소장품 규모는.

“클레, 칸딘스키, 그로피우스 등의 작품과 학생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매체별로 유화, 가구, 직물, 건축모형, 디자인 등 다양하다. 제일 중요한 유물은 1920년대 지어진 바우하우스 빌딩 그 자체다. 옛 동독 지역인 베를린의 바우하우스아카이브에서도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도 하는가.

“400㎡(120평), 200㎡(60평)의 소규모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그로피우스에 이어 두 번째 교장을 지낸 스위스 건축가 한네스 마이어의 작품 전시가 내년에 있다.”

-2019년이면 100주년이다.

“100주년에 맞춰 새로 대규모 전시장(2100㎡) 을 지어 개관할 예정이다. 내년 1월 국제공모전을 통해 건축가를 선정한다. 또 바우하우스가 원래 학교였던 점을 살려 아카데미 기능을 강화할 것이다. 옛날 같은 학교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바우하우스에 관심 있는 전 세계의 교육기관과 연계해 자유로운 정신을 실험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전시 제목이 ‘무대실험’이다. 바우하우스가 디자인, 건축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무대예술 이 부각된 건 드물다.

“무대는 배움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무대만을 위해 디자인했던 건 아니었다. 당시 퍼포먼스하는 사람은 신체를 활용한 모든 실험을 무대에서 하고, 건축 공부하는 학생은 무대를 통해서 공간을 연구했다. 무대가 하나의 오픈 플랫폼이자 하나의 실험실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잊혀지고 있다.”

-한국에선 디자인이나 공예 등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하위미술로 취급받는데.

“순수미술이든, 디자인이든 모든 게 중요하다. 바우하우스는 순수미술과 산업미술의 차이를 극복하고자하는 게 중요한 목표였다. 그래서 이 둘을 합친 ‘총체예술’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옛 선비들은 학자이면서 시서화를 같이 하지 않았나. 그런 전통을 잊지 않으면 될 것 같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