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10일 타결되면서 13억 중국인들의 내수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우리나라가 우위를 보이고 있는 기술 중심 산업은 제대로 개방을 못한 채 중국산 저가 상품 중심으로 빗장을 풀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의 거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결국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16일 “자동차 등 한국이 기술 우위에 있는 품목은 개방을 못 이뤄낸 반면 낮은 기술력의 제품은 거의 다 열었다”고 이번 FTA를 평가했다. 저가 제품은 대부분 관세가 철폐돼 국내 시장에 중국산 제품이 범람할 조건이 갖춰진 반면 기술력이 높은 국내 제품은 중국에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중국이 저가의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등에서 관세 인하 효과를 통해 국내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특히 자동차가 양허 품목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앞으로 전기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개발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 분야에 관세가 그대로 남게 되면서 중국 시장 공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축수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 때문에 개방 수준이 너무 낮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농업 분야 방어가 목적이라면 차라리 추진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개방도가 이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면 정부는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더 많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13억 인구의 중국과의 경제 협력 통로가 새롭게 열렸다는 상징적인 측면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미국, 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과도 시장을 개방하면서 FTA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전 세계 경제는 밸류 체인으로 연결돼 있어서 한두 국가와만 FTA를 체결한 것은 절름발이와 같다”며 “미국, 유럽에 이어 중국까지 FTA 체인 속에 포함시키면서 경제 허브 국가로서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표민찬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교적으로 북한 이슈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쌀을 보호한 것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중·일 FTA 등 남아 있는 다른 협상에서 기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일 울산과학대 유통경영과 교수는 “이번엔 농수산물 부분에서 양허 제외한 품목이 많았지만 향후 이 부분의 수입 개방이 십수 년 안에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FTA의 성패는 단순히 협상 결과보다도 이후의 정부 전략과 국내 기업들이 바뀐 경제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제시한 해답은 결국 ‘기술력’이었다. FTA 이후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중국의 소비시장을 공략하려면 결국 기술과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연평균 소비시장은 2014∼2019년 연평균 7조9000억 달러(약 8700조원)로 2009∼2014년 연평균 3조9000억 달러의 배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FTA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와 맺는 첫 FTA인 만큼 새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할 전담 부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윤성민 이용상 기자 woody@kmib.co.kr
[만리장성 빗장 열렸다 (5·끝)] ‘기술 격차’ 벌려야 13억 지갑 열린다
입력 2014-11-17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