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피카츄’ 보러 몰려든 주말 인파 발 밑에 깔린 유적과 안전의식

입력 2014-11-17 02:54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어울림광장에서 15일 열린 ‘피카츄 쇼타임’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몰려 있다. 연합뉴스

“잘 가 러버덕, 안녕 피카츄!”

우리에게 행복을 전한 러버덕의 빈 자리를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손님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일본의 인기 게임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피카츄’입니다.

포켓몬코리아는 15∼16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포켓몬 챔피언스데이’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메인 이벤트는 단연 피카츄 쇼타임이었습니다. 사람 크기만한 피카츄가 떼 지어 등장하는 행사인데, 일본에선 ‘피카츄 대량발생’으로 불린답니다. 유튜브에는 수십 마리의 피카츄들이 행진하는 모습이 올라와 있습니다. 뒤뚱뒤뚱 걷는 피카츄를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람들은 이 광경을 직접 보기 위해 15일 DDP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현장에는 주최 측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파가 몰렸습니다. 모습을 드러낸 피카츄는 기대보다 훨씬 적은 10마리였습니다. 인파에 파묻힌 피카츄의 모습은 퍼레이드가 아닌 탈출 작전을 방불케 했습니다.

행사는 오후 2∼6시까지 정각마다 20분씩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피카츄들은 빠르게 철수했습니다. 주최 측은 안전문제를 이유로 2시 이후 행사를 줄줄이 취소했습니다. 16일에는 퍼레이드 대신 5군데로 분산해 포토타임 존이 운영됐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이벤트가 허무하게 끝나자 인터넷이 들끓었습니다. “장소는 너무 좁고 보안 인력은 없고 사람은 많았다” “이게 무슨 피카츄 대량발생이야 인간 대량발생이지” 등의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최 측의 미숙한 운영과 함께 시민의식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피카츄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DDP 광장의 문화유산인 유구(遺構) 전시장을 마구 밟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된 겁니다. 평지보다 약간 솟아있는 유구 전시장은 별도의 바리케이드 없이 설치돼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피카츄를 위해 시민의식을 포기했다” “유적지를 저렇게 밟다니 개념이 없다”며 혀를 찼습니다. 반면 “거기 모였던 인파를 봤다면 시민의식 문제라고 말 못할 거다. 모든 이벤트는 관리와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섰습니다.

DDP 관계자는 “압사 사고가 우려될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유적지 문제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해 행사를 취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피카츄가 단지 인형 탈을 쓴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어른이 누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피카츄를 보기 위해 셀카봉을 들고, 유적지라는 사실마저 잊고 달려가게 되는 건 무슨 마법일까요.

주최 측의 잘못도 있고, 시민의식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판교 환풍구 참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요.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