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땐… ‘지역주의’ 엷어지고 ‘제3당’ 나온다

입력 2014-11-17 02:52

최근 정치권에 선거제도 개편 바람이 부는 가운데 야권을 중심으로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대권주자인 문재인, 안철수 의원은 비례대표제 개혁을 주창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 결과를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영호남 지역주의가 크게 완화되고, 원내교섭단체(20석)를 넘기는 제3당이 출연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영남 ‘텃밭’에서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아 숙제가 될 전망이다. 비례대표 확대는 도입 취지와 달리 여야의 계파 나눠먹기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당명부제 도입하면 새누리당은 서울 이득, 새정치연합은 영남 진출 용이=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152석,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은 127석을 얻었다.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무소속 3석이었다. 소선거구제로 지역구 의원을 뽑고, 전국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한 결과다. 특히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합쳐서 279석(92.9%)을 얻었는데 두 당이 얻은 정당득표율(79.3%)과 비교하면 약 40석(13.6%)이 많다. 영호남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양대 정당이 자신들이 얻은 지지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챙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 비례대표 확대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3월 발행한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선방안의 시뮬레이션 분석’을 살펴보면 실제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19대 총선 결과를 정당명부제에 적용할 경우 새누리당 151석, 새정치연합 126석, 통합진보당 33석, 자유선진당 10석으로 나타난다. 제도의 특성을 고려해 총 의석수를 320석으로 늘렸는데 증가한 의석 대부분이 군소정당에 돌아갔다.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제3당이 언제든 출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주의 완화와 사표 방지 효과도 크다. 영남의 경우 새누리당이 49석, 새정치연합이 20석을 가져갈 수 있다. 호남·제주는 새정치연합이 23석, 새누리당이 4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새정치연합의 영남 진출이 유리한 셈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이득을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16석에 그쳤다.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결정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적용하면 새누리당 29석, 새정치연합 30석으로 조정된다.

◇문재인 “권역별 비례대표제”, 안철수 “개방형 정당명부제”=독일식은 계산방식이 복잡하고, 전체 의석수가 선거 때마다 변하는 게 단점이다. 이에 비하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전국을 7개 권역으로 나누고, 비례대표를 현행 54석에서 100석으로 늘리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의원정수를 300석으로 고정하려면 지역구만 200석으로 줄이면 된다.

이 방식의 경우 영남권 비례대표는 새누리당 16석, 새정치연합 7석이 배분됐다. 호남은 새정치연합 7석, 새누리당 1석이었다. 전체 비례대표 의석은 새누리당 46석, 새정치연합 39석, 통합진보당 11석, 자유선진당 4석 순이었다. 각 당이 실제 총선에서 얻은 비례대표 의석수와 비율이 거의 같으면서도 지역 편중은 완화된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거론하는 방식은 세부 사항에서 큰 차이가 난다. 문 의원은 독일식이 아닌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주장한다. 문 의원 측 관계자는 16일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2대 1로 할지,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릴지 등은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며 “중요한 것은 사표 방지”라고 말했다.

반면 안 의원은 개방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무게를 싣고 있다. 각 정당이 비례대표 명단을 공개한 뒤 유권자가 직접 비례대표 후보에게 투표하는 방식이다. 또 의석수는 300석으로 고정하고, 권역별이 아니라 현재처럼 전국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비례대표 선출에 있어 유권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Key Word-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제

지역구 의석수와 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수를 연동해 총 의석수를 조정한다. 권역별로 독자적인 명부를 만들어 비례대표를 선출한다.



Key Word-권역별 비례대표제

각 정당이 권역별로 얻은 정당득표율 등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배분한다. 그러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별도로 뽑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엄기영 최승욱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