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남(49)씨는 인천 남구에 있는 인천소방안전본부에서 회계장비팀 조정관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는 다양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급 활동에 매진한 소방관이었다. 당시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김씨는 소방관으로서 많은 시민을 구했고 자신의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해 생명나눔을 실천한 이력도 있다. 지난 5일 인천소방안전본부에서 만난 김씨는 “골수기증을 한 뒤 느낀 기분이 구급 활동을 하며 사람을 살렸을 때의 보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급 활동을 하다 보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죽는 장면도 많이 보게 되지요. 그런 상황을 자주 겪으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할 수밖에 없어요.”
경기도 파주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1980년 인천으로 이사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김씨가 대학교 3학년일 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으로 이사했을 때 저희 가족은 정말 무일푼이었어요. 만수중앙감리교회 교인들의 도움 덕분에 그나마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교인들이 쌀이나 계란을 자주 선물해 주셨거든요. 아버지 장례식도 교인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조의금 덕분에 치를 수 있었어요. 저한텐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그가 골수기증을 약속하는 서약식에 참가한 건 2002년 2월이었다. 서약식은 만수중앙감리교회에서 진행됐다. 현재 김씨는 이 교회 권사 직분을 맡고 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세상에 되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서약식에도 기꺼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2003년 9월 김씨의 골수와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하는 환자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김씨는 식단을 채식 위주로 바꿨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건강한’ 골수를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4년 2월 골수를 추출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요즘은 헌혈과 비슷한 방식으로 골수를 추출하지만 당시는 쭈그리고 모로 누운 상태에서 허리에 주사를 꽂아 골수를 추출했죠. 마취할 때 너무 아프더군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골수 상태가 참 좋더라’고 칭찬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웃음). 한 10대 소녀가 제 골수를 기증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가끔 궁금해요. 결혼은 했는지, 잘 살고 있는지….”
10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아직도 골수기증 당시 느낀 보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골수를 기증하고 영혼이 더 맑아진 기분”이라며 “많은 이들이 골수기증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앙인으로서 생명나눔운동에 동참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장모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 인생이라는 게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들꽃과 다를 게 없구나.’ 짧은 삶에서 누군가에게 가장 큰 선물, 생명을 주고 갈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겁니다.”(생명을나누는사람들 : 1588-0692)
인천=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이 캠페인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지원합니다.
[장기기증,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4) 인천소방안전본부 회계장비팀 김성남 조정관
입력 2014-11-17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