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영토싸움… 유럽우주기구 혜성 착륙 이어 日도 11월 30일 소행성 탐사기 발사

입력 2014-11-18 02:44
탐사로봇 필라이가 지난 12일 우주탐사선 로제타에서 분리돼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하 67P)'로 하강하면서 찍은 67P의 표면 사진. ESA 제공
로제타는 2004년 지구에서 발사된 지 10년 만에 67P에 탐사로봇을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래는 로제타가 필라이를 내려보내는 장면을 유럽우주기구(ESA)가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한 모습이다. ESA 제공
일본 소행성 탐사기 '하야부사 2'(왼쪽).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 1호' 조감도
달에 착륙한 중국 창어3호의 탐사차량 '옥토끼호'
인도 화성 탐사선 '망갈리안'
우주선이 10년을 날아가야 닿을 만큼 먼 거리의 조그만 혜성에 탐사로봇을 착륙시킬 만큼 인류의 우주탐험은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무한한 공간 속에서 인류의 기원과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힌다는 가설은 공상과학 영화처럼 듣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이면에는 우주개발의 헤게모니를 쥐려는 우주 강국들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지난 12일(세계표준시간 기준) 유럽우주기구(ESA)가 쏘아올린 우주탐사선 로제타(Rosetta)의 탐사로봇 ‘필라이(Philae)’는 착륙 3일 만에 배터리 방전으로 임무를 100%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인류가 만든 구조물이 혜성에 착륙한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일본도 오는 30일 소행성 탐사기 ‘하야부사2’를 가고시마현 다네가 섬에서 발사할 예정이다. ‘하야부사’는 일본어로 송골매라는 뜻이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하야부사2의 임무에 대해 “소행성에 접근해 태양계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야부사가 향하는 ‘1999JU3’은 지구와 화성 주변을 도는 직경 900m의 소행성으로 1999년 발견됐다. 생명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유기물과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야부사2는 로켓에 얹혀 발사된 뒤 2018년 6∼7월쯤 소행성 ‘1999JU3’에 도착, 소행성 암석을 채취하고 2020년 말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필라이와 하야부사2 등의 탐사 활동은 인류의 기원 규명과 과학 발전 등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주 공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각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깔려 있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 우주 강국이 나타나면서 우주 개발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측면이 있다.

◇우주 개발의 신흥 ‘큰손’ 중국의 부상, 미국과 일본의 견제=우주 개발 1세대의 주역은 미국과 러시아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냉전 기간 양강 체제를 구축한 두 나라는 우주 개발에 대한 끊임없는 경쟁을 벌여 왔다. 양국은 일찍이 달 탐사를 비롯해 우주정거장 건설 등에서 앞서 나갔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각기 자국 내 여론 악화와 예산 부족 등의 사정으로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고 있다.

중국은 우주 개발에 전방위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신흥 ‘큰손’이다. 15일 중국은 원격탐지위성 23호를 우주에 안착시켰다. 위성이나 우주 실험체를 쏘아올린 로켓 창정(長征)은 이번 위성을 포함해 지금까지 198번이나 발사됐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세계 세 번째로 달 탐사위성인 창어(嫦娥) 3호를 달에 착륙시킨 데 이어 지난 1일에는 달 탐사 위성의 지구귀환 비행까지 성공시켰다. 중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는 2020년 완성을 목표로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1단계 ‘요(繞)’는 달 궤도를 도는 것이고, 2단계 ‘낙(落)’은 달에 착륙하고, 3단계 ‘회(回)’는 달에서 얻은 각종 자료를 갖고 지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벌써 3단계를 위한 첫 실험을 성공시킨 셈이다.

달 탐사뿐만이 아니다.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공정과 우주정거장 사업도 중국 우주 개발의 주축이다. 중국의 우주사업 세 분야 가운데 우주선 프로젝트인 선저우 공정은 가장 큰 규모다. 1999년 11월 무인 우주선 선저우 1호 발사를 시작으로 2003년 10월 마침내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 5호가 올라갔다. 이런 상승세를 타고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 운영하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배제됐다. 하지만 2011년 9월 자체 개발한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天宮)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한 데 이어 2012년 6월에는 네 번째 유인 우주선 선저우 9호가 톈궁 1호와 자동 및 수동 도킹에 성공했다. 중국은 이를 토대로 2022년까지 톈궁 우주정거장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은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등 16개국이 공동 운영 중이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각국은 ‘눈치 싸움’만 벌이고 있다. 원래 2020년 수명이 다할 예정이었다. 그나마 올 초 미국이 수명 연장을 위한 예산 집행을 승인해 2024년까지 4년간 더 가동하게 됐다. 그러나 2024년 이후에는 중국이 지은 톈궁이 국제우주정거장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주 공간의 헤게모니가 급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과 일본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개정을 추진 중인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우주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군비 감축 기조와 맞물려 중국 견제 차원에서 일본의 방위력과 우주 개발 능력을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맞춰 일본 내각부 우주전략실은 지난달 31일 우주 개발과 이용 방침을 담은 우주 기본계획 개정안을 자민당 우주전략소위원회에 제시했다. 이를 두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새 우주 기본계획이 중국의 적극적인 우주 확장 정책을 의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 또 다른 강자로 부상, 민간 회사들도 활발=우주 개발에 있어 또 다른 ‘복병’들이 있다. 지난 9월 24일 인도의 화성 탐사선 망갈리안(Mangalyaan)이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이로써 인도는 미국 러시아 EU에 이어 네 번째로,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화성에 우주선을 보낸 국가가 됐다. 일본과 중국은 1999년과 2011년 화성 탐사선을 발사했지만 화성 궤도 진입에는 실패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발사 첫 시도에 궤도 진입 첫 성공 사례란 점에서 인도의 성공을 전 세계가 주목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발사에 성공한 점도 눈에 띈다. 인도가 망갈리안을 발사한 데 쓴 비용은 45억 루피(768억원)다. 비슷한 시기 화성에 진입한 미국의 탐사선 메이븐(Maven)에는 모두 6억7100만 달러(6975억원)가 투입됐다. 더힌두 등 현지 언론들은 “연구원들이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우주 개발에 매달려온 데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인도는 2016년 유인 우주선도 발사할 계획이다.

중국의 달 착륙 성공에 고무된 러시아 역시 1976년 ‘루나 24호’ 이후 근 40년 만에 달 탐사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부활시키기로 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우주연구소장을 인용해 이미 3대의 달 탐사선 발사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2016년 발사 예정인 ‘루나 25호’와 2019년 발사 예정인 ‘루나 27호’는 달에 착륙해 일련의 실험을 하고, 2018년 발사 계획인 ‘루나 26호’는 달 궤도에 발사돼 원거리 탐사를 벌일 계획이다.

민간 차원의 우주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 우주항공 기업인 아스트리움은 2018년 자체 개발한 화성탐사 로봇 엑소마스(ExoMars)를 화성에 보낼 계획이다. 화성 유인 탐사를 추진하는 민간 프로젝트인 ‘마스원’도 2018년과 2022년 두 차례 무인 탐사선과 화물선을 보내 화성에 정착 기지를 만들고 2024년 첫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세기 지상의 헤게모니 싸움이 21세기 우주공간의 무한경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