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후보로 처음 거론된 건 8년 전이었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말, 반 전 외교부 장관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자마자 친노(親盧)그룹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그를 거명했다. 당시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겨냥한 포석이었다. 유엔 사무총장 5년 임기가 2011년 끝나니 그 이듬해 치러지는 대선에 출마시키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도 나왔다. 이어 2008년 민주당 내에서 ‘반기문 대통령 후보론’이 다시 제기됐다. 역시 민주당 내에 주목할 만한 대선주자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대선에 관심 없다는 반 총장의 강한 의지가 주요인이었다. 게다가 반 총장이 연임에 성공하자 정치권의 러브콜은 수그러들었다. 그 이후 반 총장을 대선에 세우자는 논의 자체가 사라졌다.
그러던 중 최근 다시 불거졌다. 새누리당 친박(親朴)그룹에서 잠시 꺼내들었다가 슬며시 철회했으나 곧바로 새정치민주연합 내 ‘DJ맨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권노갑 상임고문과 박지원 의원의 주장은 구체적이다. 반 총장 측근들이 찾아와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 대통령 후보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는 것이다.
친노그룹처럼 친박계와 DJ맨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속내가 있다. 18대 총선 당시 친이계에 의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던 친박계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반 총장을 옹립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개연성이 크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다. 새누리당 내 차기 대선주자들이 고만고만한 현 상황도 고려됐을 법하다. DJ맨들은 소위 ‘뉴DJP 구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DJP연합이 김대중정부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처럼 충청 출신인 반 총장과 힘을 합치면 정권 탈환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반기문 후보론’을 확산시키려는 게 아닐까 싶다. 혹자는 ‘어게인 호청(湖淸)연합’이라 부른다. 새정치연합 내에서 점점 약해지는 호남 세력을 다시 강화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반 총장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워낙 높은 만큼 그를 영입하고자 하는 각 정파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국민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 총장은 정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자원이 아니다. 국제사회 최고의 외교관 지위에 오른 반 총장을 선거의 불쏘시개 정도로 여기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특히 반 총장이 에볼라 사태 등 국제 이슈 해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태에서 차기 대선 출마 운운하면 유엔 회원국들과 사무국 직원들로부터 불필요한 의문이 제기됨으로써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직무 수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는 반 총장 측의 입장 표명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동양인이 유엔을 이끈다는 점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하며 반 총장을 흔들려는 세력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정치권의 ‘반기문 쟁탈전’은 그들에게 반 총장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반 총장이 유엔에서 제 역할을 다한 뒤 자랑스럽게 귀국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옳다.
국민들이 반 총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기성 정치에서는 볼 수 없는 그의 리더십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면서 보여준 중도와 타협의 지도력, 온유하면서도 강력한 추진력,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탁월한 소통의 기술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권에 반 총장의 반만이라도 닮으라는 경고의 의미도 내포돼 있다. 여야가 반 총장의 리더십부터 배워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반기문 신드롬’의 교훈이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한 반 총장 측의 해명이 다소 모호한 점은 아쉽다.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라고만 밝혔을 뿐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딱 부러지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정치권의 잇단 구애에 반 총장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걸까.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그의 리더십부터 배워라
입력 2014-11-17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