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69) 여사가 예전과 달리 민주화 행보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그동안 수치 여사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뉴욕타임스(NYT) 등 해외의 진보적인 언론들도 수치 여사의 이런 행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NYT는 수치 여사가 정치 활동에 뛰어든 뒤 인권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지지자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수치 여사가 2010년 11월 가택연금에서 벗어난 지 4년이 흘렀지만 줄곧 미얀마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에 정면 대응하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2012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하원의원이 된 뒤 민족·종교 분쟁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일례로 수치 여사는 분쟁지역인 카친주에서 정부군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다친 데 대해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미얀마 북부에 위치한 카친주는 분리독립과 자치 확대를 요구하는 카친독립기구(KIO)와 정부군 사이 갈등과 교전으로 난민 16만여명이 발생한 지역이다.
수치 여사의 ‘침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치 여사는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탄압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폭력이란 양쪽 모두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또다시 양비론을 폈다. 미얀마 라카인주에서는 2012년부터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로힝야족과 다수인 불교도 간의 종교·종족 갈등으로 200여명이 숨지고 14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동남아 민주화운동의 대모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 수치 여사의 이러한 태도는 ‘인권 수호자’의 입장에서 퇴보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그의 ‘침묵’이 대선 출마를 위한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수치 여사는 내년에 대선 도전이 유력시되지만 가족 중 외국인이 있으면 대선 출마를 금지하는 헌법 때문에 실제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는 영국인 학자와 결혼해 영국 국적의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때문에 정부와 군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대선 출마를 위한 ‘개헌’을 이끌어내기 위해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수치 여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미얀마가 여전히 엄혹한 군부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수치 여사가 척박한 정치 환경에서도 잘 싸워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0년 미얀마 군부는 총선을 통해 민간에 정권을 이양했지만 미얀마 정치권에는 군부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다.
이런 가운데 ASEAN 정상회의 참석차 미얀마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얀마 양곤에서 수치 여사를 만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이들을 이유로 대선 출마를 금지하는 조항을 이해할 수 없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몸 사리는 아웅산 수치… 변절? 정치적 계산?
입력 2014-11-15 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