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억5000만원 쏟아붓고 ‘노후 쪽박’… 지위 상승 기대감은 갈수록 하락

입력 2014-11-15 02:43
영어학원 50만원, 수학과외 80만원, 요가학원 20만원…. 서울 강남의 중학교 3학년 김나윤(가명·15)양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한 달에 150만원이 넘는다. 중2까지는 100만원 수준이었는데 중3이 되면서 ‘예비 고1’ 꼬리표가 붙자 껑충 뛰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나윤 엄마 권모(43)씨는 이 돈을 대기 위해 올 들어 초등생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권씨는 “애 성적이 상위권인데 떨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투자할 수밖에 없다”며 “내 시간, 내 돈을 포기하는 게 쉽겠어요, 자식 미래를 포기하는 게 쉽겠어요?”라고 되물었다.

많은 부모들이 권씨처럼 자녀의 미래가 사교육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양육비로 1인당 평균 1억6438만원을 쓰고 있다(2012년 기준). 이 돈의 대부분은 교육에 들어가고 그 교육비의 80%는 사교육이 가져간다. 자녀 1인당 12년간 1억3000만원 가까이 사교육에 쓰는 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사회 저출산 해법을 찾는다’ 세미나를 열고 이런 실태를 공개했다. ‘자녀 교육 부담 해법은 있는가’란 보고서를 보면 한국 부모는 자녀를 위해 초등학교 6년간 평균 7596만원, 중·고교 6년간 8842만원을 쓴다. 영유아 시절 양육비, 대학 학비, 결혼 비용까지 더하면 한 명 키우는 데 3억4000만∼3억5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투자를 아끼지 않지만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부모의 기대감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나보다 높아질 거라 보는가’란 질문에 1994년 10명 중 6명이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2003년엔 이 비율이 45.5%로 줄었고 2013년엔 10명 중 4명(39.9%)만 그렇다고 했다.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은 1994년 5.1%에서 2003년 19.8%, 2013년 43.8%로 급증했다.

이런 통계는 소 팔고 논 팔아 공부시키면 나중에 그 자식이 성공으로 보답하던 시대가 이미 지났음을 보여준다. 점점 더 견고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 속에서 ‘자식 농사’는 갈수록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돼 가고 있다고 세미나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그럼에도 계속 사교육에 투자하는 건 ‘우리 애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다른 부모가 사교육을 포기한다면 나도 포기하겠다는 응답이 47.6%나 됐다. 초등학교 교사 배모(39·여)씨도 “학교 현장에선 사교육 효과가 크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내 아이에겐 적용이 안 된다. 남들만큼은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를 쓴 한국개발연구원 김희삼 연구위원은 “사교육에 들이는 시간에 비해 성적이 오르는 수준은 미미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효과는 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미약한 사교육 효과에 기대를 걸고 부모가 가장 많이 포기하는 것은 ‘노후 대비’(57.2%) ‘레저·문화생활’(25.4%) ‘건강관리’(13.9%)였다. 나윤 엄마 말처럼 자신의 노후나 행복보다 불확실하지만 아이의 미래에 투자하는 부모가 많다는 소리다.

하지만 부모의 불안정한 노후는 자녀의 교육과 미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대기업에 다니다 승진에서 밀려 지난해 말 퇴직한 이모(46)씨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는데 잘 안 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중2인 둘째 영어학원을 중단했다. 이씨는 “사업이 불안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은 갈수록 많아지고 전혀 준비하지 못한 내 노후 걱정에 막막할 때가 많다”며 “자식 농사 잘 지으려다 내 미래가 저당 잡혔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