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변별력은 필수다. 일정한 수준이면 전원 합격시키는 자격시험이 아닌 이상 학업의 우열을 정확히 가릴 수 있도록 적절한 난이도를 갖춰야 한다. 수시모집에서 최저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정시모집에선 그 성적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능이라면 변별력 있게 출제해야 함은 상식이다. 그러나 13일 치러진 내년도 수능은 변별력에서 완전 실패했다.
입시업체들의 가채점에 따르면 영어와 수학이 너무 쉬워 ‘물수능’임을 실감하게 됐다. 영어는 1등급 컷이 98점으로 예상돼 비중이 큰 문제 하나만 틀려도 2등급이 된다. 이과생이 응시하는 수학B는 1등급 컷이 100점이어서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이 된다. 만점자 비율이 4%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 당국은 시험을 쉽게 낸 이유로 사교육을 줄여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EBS 교재 반영률을 높임으로써 학원에 가지 않고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벽오지 거주자를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은 EBS 교재를 들고 학원에 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체하는가. 시험을 쉽게 낸다고 해서 학원 수강과 과외가 줄어든다는 것은 교육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그런다고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수능 난이도와 공교육 정상화는 별개다.
물수능은 입시현장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평소 실력이 있으나 어이없는 실수로 목표하는 대학에 갈 수 없게 돼 재수, 삼수로 내모는 부작용을 부른다. 올해 수학B를 본 상위권 이과생들의 경우 1등급 확보뿐 아니라 백분율과 표준점수 모두 변별력이 없어 학교 선택시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시 최저 등급을 맞추는데도 실력보다 실수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국가관리 시험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거기다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경우 선택과목 간 변별력을 갖추지 못해 실력보다 운이라는 말이 나돌게 생겼다. 교육 당국의 자성이 요구된다.
[사설] 변별력 없는 수능 입시현장 혼란 빠뜨린다
입력 2014-11-15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