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명 글자로 달력 만들어 노숙인 도와요

입력 2014-11-17 02:23
노숙인 자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작된 2015년 달력 ‘하루를 쓰다’. 달력은 연력 월력 일력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19일부터 서울 서초구 코트라오픈갤러리에서 관련 전시회도 열릴 예정이다. 아트랩 꿈공작소 제공

얼핏 보면 평범한 달력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날짜의 ‘필체’가 저마다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노숙인 장애인 어린이 문화예술인 등 우리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이 자신만의 글씨체로 쓴 날짜다. 가수 윤도현, 배우 양동근 이선균 등 연예인의 글씨도 많다.

이들은 달력 판매 수익금이 노숙인 자활 기금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달력 제작에 동참했다. 날짜를 하나씩 쓴 게 전부지만 이들이 직접 쓴 날짜를 모아 탄생한 달력은 꽤 근사하다. 달력 이름은 ‘하루를 쓰다’. 달력 표지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글씨다.

‘하루를 쓰다’ 달력을 기획한 인물은 최성문 작가다. 그는 예술가들의 공동체이자 달력 작업을 총괄한 단체인 ‘아트랩 꿈공작소’를 만든 인물이다. 최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노숙인 사역 단체 ‘바나바하우스’에서 만난 최 작가는 “주기도문을 묵상하다 달력 프로젝트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주기도문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대목이 있잖아요. ‘나’가 아닌 ‘우리’라고 표현돼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민 끝에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달력을 생각하게 됐지요.”

‘하루를 쓰다’ 프로젝트는 지난 1월 시작됐다. 최 작가는 바나바하우스가 운영하는 노숙인 대상 무료급식 단체인 ‘바하밥집’의 봉사 현장을 찾았다. 서울 동대문구 대광고 인근 공터였다. 그는 이곳에서 만난 노숙인 손성일씨에게 ‘1’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2015년의 첫날을 의미하는 ‘1’이었다.

손씨는 이때의 인연으로 지난 3월 동대문구 나들목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김형국 나들목교회 목사는 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의 ‘31’을 썼다. 최 작가는 “달력의 시작과 끝이 묘하게 이어져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두 사람의 ‘날짜’를 이렇게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까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날짜를 하나씩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총 364명으로부터 날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0월 31일의 ‘31’은 달력 구매자가 직접 채워 넣도록 만들었습니다. 각기 다른 364개의 날짜에 자신의 날짜 하나를 포개어 2015년을 완성하는 달력인 거죠.”

달력은 일력(3만6500원) 탁상용 월력(1만2000원) 벽걸이용 월력(2만2000원) 연력(4000원)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인터넷 쇼핑몰 천삼백케이(1300k.com)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최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달력을 구매해 ‘달력을 통한 나눔’이라는 처음의 꿈이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070-7732-2824).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