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군납비리와 성실실패는 달라

입력 2014-11-15 02:45

“방위산업이 언제는 좋은 평가를 받았나요. 구린 곳이 있는 곳, 왜곡된 관행이 있는 곳처럼 비쳤지요. 비리와 부실은 다른 것입니다. 군납비리는 엄정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렇지만 개발과정에서 능력 부족으로 발생한 부실마저 ‘비리’로 매도되면 안 됩니다.” 한 중견방산업체 관계자는 최근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 방위산업을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고 토로했다. 잇따라 터져 나오는 무기도입 관련 비리들에 방산업계 종사자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기밀유출에서부터 뇌물수수, 원가 부풀리기 등 방산업계가 온갖 비리가 만연한 부패의 온상으로 비치고 있어서다.

방위산업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분야라 작은 부정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방산비리에 대해 국민들이 더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군납비리와 무기체계 개발과정에서 예산과 기술력 부족으로 발생한 오류나 실수는 구분돼야 한다. 방산업계 한 원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해외에 수출되고 있는 국산전차는 생산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988년 처음 국산전차가 나왔을 때는 정말 ‘개판’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형이라고 했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은 거의 없고 모든 부품과 체계가 외국산이었다. 그는 “한국형이라고 한다면 우리 손으로 우리 무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뿐이었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형 전차 1대 만드는 비용으로 미국 전차 M-60을 10대는 살 수 있다고 M-60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전차는 포가 갈라지고 트랜스미션이 깨지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1호 전차에서부터 360호 전차까지 똑같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조금씩 개선해가며 생산하다 보니 같은 형상이 나올 수 없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엄청난 불량품’이 양산된 셈이다.

1978년 9월 26일 우리나라는 백곰 미사일 발사에서 성공해 세계에서 7번째로 미사일 보유국이 된다. 그날 개발에 참여했던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들은 얼싸 안고 울었고 현장에 있었던 고 박정희 대통령도 감격했다. 박 대통령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도탄 시험발사가 있었다. 1974년 5월 유도무기 개발 방침이 수립된 지 불과 4년 만에 성공적으로 완성해 역사적인 시험발사가 있었다. 우리 과학자들과 기술진의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

백곰 미사일이 개발 성공에 이르기까지 숱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무기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런 실수를 ‘성실실패’라고 한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미흡한 기술과 부족한 예산으로 발생한 오류를 의미한다. 최첨단 무기기술을 갖춘 미국도 성실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 F-35를 만들면서 숱한 부실로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드러난 통영함 비리나 공군전투기 시동장치 납품 등은 악성 군납비리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는 당연히 혹독한 징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성실실패마저 비리로 분류돼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해외수출은 지난해 34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2004∼2011년 개발도상국 대상 재래식 무기 판매 보고서’에서 한국이 수출계약한 재래식 무기류는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로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중국에 이어 5위라고 밝혔다. 반면 재래식 무기 수입은 줄었다. 기를 쓰고 국산화를 해온 덕분이다. 이명박정부는 방위산업을 ‘신성장 동력’이라고 치켜세웠고 박근혜정부도 방위산업을 중요한 분야로 간주했다. 이제는 옥석을 가려 정상적인 분야는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