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 지난 9일. 전북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 케이블카 앞에 하루 종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울긋불긋 옷을 입은 탐방객들은 2시간 이상을 기다려 케이블카에 올랐다. 상부승강장까지 운행시간은 7분. 7000여명의 탐방객은 최고 절정인 오색단풍과 산세를 한눈에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단풍철마다 전국 유명 산의 케이블카는 등반객들에게 큰 인기다. 힘들여 산을 오르지 않고도 짧은 시간에 주변 풍광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약자나 연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관광객들에게 케이블카는 요긴한 운송 수단이다. 케이블카 하나가 설치되면 새로운 관광객이 유입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퉈 지역의 산과 바다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경남 통영시가 케이블카로 지역 경제를 살린 사례가 회자되면서 지자체들의 케이블카 설치 경쟁을 부추겼다.
먼저 강원도와 양양군은 설악산 오색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3번째 도전에 나섰다. 이 사업은 그동안 2차례나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됐으나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오색로프웨이사업의 조기 추진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도와 군은 남설악 오색지구에서 산 정상 부근까지 3.4㎞를 연결하려고 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 1월 이전에 가동할 수 있도록 사업 추진에 고삐를 죈다는 계획이다. 두 지자체는 14일 “이 사업이 완성될 경우 파급효과가 연간 1287억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지리산을 둘러싼 3개 도, 4개 시·군은 지리산권 케이블카를 끌어오기 위해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 지역 지자체의 단체장들은 모두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남 구례군은 산동면 온천지구부터 지리산 종석대까지 3.1㎞ 구간이 최적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례군과 군의회는 “지리산을 살리고 낙후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케이블카가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남 함양군은 백무동∼장터목 구간 3.3㎞, 산청군은 중산리∼제석봉 5.2㎞에 설치하는 것을 각각 제안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는 운봉읍 용산리에 케이블카를 건설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시는 250억원을 들여 2.1㎞ 길이의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남원시 관계자는 “후보지가 백두대간에 포함돼 있지 않은 데다 허브밸리 등 지역 명소와도 가까워 경쟁력이 크다고 본다”며 “민간 자본 유치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환경부는 이들 시·군에 ‘자율조정’을 통해 후보지를 정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서로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충북도와 보은군은 속리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를 재추진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와 지역 상인들은 침체된 속리산 관광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2004년부터 케이블카 설치를 요구해 왔다. 울산시와 울주군도 신불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 중이다. 두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하는 공공개발 방식으로 300억∼5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부산 서구는 ‘송도 해상케이블카 복원 사업’을 펴고 있다. 서구는 개장 100년 된 송도해수욕장 앞 암남공원과 송림공원 사이 1.62㎞의 바다 위에 케이블카를 연결하려고 하고 있다. 1988년 철거된 시설을 복원하는 것으로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서구는 민간자본 투자 방식으로 내년 여름 준공을 목표로 추진했으나 사업비가 30%나 증가해 아직 승차장 부지, 인근 주차장 시설 등 기초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앞서 전남 여수에선 지난 7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가 완공됐다. 사람을 태우는 50대의 캐빈 가운데 10여대의 바닥을 투명유리로 만들어 발밑으로 여수항을 조망할 수 있어 관심이 높다. 하지만 주차장 확보와 진입로 문제로 아직 개장하지 못하고 있다.
경남 사천 한려해상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사업은 내년 시작될 예정이다. 사천시는 2012년 2.4㎞에 이르는 케이블카 공사를 허가받았다. 이 가운데 일부는 바다 위에 놓여진다.
하지만 지자체들의 케이블카 경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명 산과 바다에 무분별하게 설치돼 자연환경과 문화재만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 동구는 32년간 팔공산 갓바위 케이블카 설치에 힘을 쏟아왔다. 하지만 1982년과 2005년에 이어 지난해 문화재청에 낸 ‘현상변경 허가 신청’이 경관 훼손 우려 등의 이유로 허가받지 못해 사실상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환경·문화재 훼손을 걱정하는 선본사와 환경단체들의 반대가 여전히 거셌다. 속리산에서도 환경단체와 법주사의 반대가 계속되고 있다.
설악산에서는 멸종 위기종인 산양 등 야생동물의 서식 환경이 파괴될 우려가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는 “연간 60만명 이상이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을 오르게 되면 산 정상 부근이 훼손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정상부터 환경이 무너져 내리고 결국엔 국립공원의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과연 경제성이 있느냐는 논란도 여전하다. 통영과는 달리 많은 케이블카가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전국 제일의 단풍명소인 내장산 케이블카는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다른 때에는 손님이 뚝뚝 떨어져 1년에 두 달 이상을 쉬고 있다. 울산 신불산 역시 환경훼손 문제에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데 반대 목소리가 크다.
케이블카는 국립공원이 포함될 경우 환경부가, 다른 지역은 각 지자체가 허가를 내준다.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2012년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 심의안 7건 가운데 경남 사천만 통과시키고 6건은 부결시켰다.
환경부 관계자는 “케이블카가 초기엔 반짝 인기를 모으다 2∼3년 사이에 시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들이 너도 나도 설치하다 보면 모두 경제성을 담보하지 못할 텐데,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치밀한 검토 후에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원=김용권 기자 전국종합 ygkim@kmib.co.kr
[‘케이블카 대박론’ 허와 실] 황금알? ‘지리산 케이블카’ 7개 지자체 양보 없는 한판
입력 2014-11-15 02:50 수정 2014-11-15 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