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들이 평화롭게 거니는 숲과 늑대 같은 무서운 포식자들이 사는 숲 중 어느 곳이 더 건강한 생태계일까. 정답은 공포의 숲이다. 포식동물이 없으면 초식동물의 수가 지나치게 불어 어린 나무들까지 마구 먹어치운다. 식물이 줄어들면 토양의 침식작용이 빨라져 강과 호수가 오염되고, 더불어 어류의 숫자도 감소한다. 포식동물의 유무가 숲 생태계는 물론 수생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연 생태계에서 종의 다양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인간의 몸에도 마치 아프리카 동물 세계를 옮겨 놓은 듯한 생태계가 있다. 약 1000조개의 미생물이 득실거리는 장속이 바로 그곳. 인간의 위장관은 미생물이 서식하기에 더 없이 완벽한 장소이며, 거의 분 단위로 진화가 이루어지는 생태계이다. 장내 생태계도 종의 다양성에 따라 건강성 여부가 결정된다. 프랑스 연구팀에 의하면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이 낮은 그룹의 경우 비만과 염증 및 발암성 물질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다. 반면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이 높은 쪽은 항염증 작용과 인체에 도움이 되는 유기산이 많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식단 조절을 통해 건강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 회복 때문임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이다.
또한 장내 미생물은 건강뿐 아니라 식습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호하는 영양성분이 각각 다른 미생물은 신호전달물질을 방출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성장에 가장 좋은 특정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한다는 것. 예를 들면 어떤 미생물은 당분을 섭취하도록 유도하며, 또 다른 미생물은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도록 한다. 따라서 평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 장내에 이를 먹고사는 미생물이 더욱 많아져 자꾸 지방 성분을 섭취하도록 유도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산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 텍사스대학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침팬지나 고릴라 등의 아프리카 유인원의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이 가장 풍부하며 그 다음은 비산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산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미국인의 순으로 나타난 것. 미국인의 종 다양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운동 부족 및 항생제의 잦은 사용 등과 같은 생활습관의 변화와 육류를 많이 섭취하고 채소를 덜 먹는 식습관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사이언스 토크] 몸 안의 생태계
입력 2014-11-15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