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무상보육 논란 와중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최근 증세론이 불쑥 튀어나왔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문재인 의원도 “복지재원이 부족하면 증세를 검토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당 차원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향후 증세론이 적극 논의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세금 인상에 대한 국민여론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복지를 위한 증세론’을 꺼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증세론의 뚜껑을 연 것은 문 비대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10일 비대위 회의에서 “무상보육·무상급식 모두를 포기 안 하려면 해법은 증세로 갈 수밖에 없다”며 깜짝 발언을 했다. 이어 문 의원은 12일 “복지재원이 부족하다면 장기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증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당 대표와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증세론을 동시에 꺼낸 것이다.
그러나 당내 기류는 신중하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아이들의 밥 한 끼, 마땅히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보육문제, 대통령의 약속마저도 시·도교육감에게 떠넘기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느냐”며 “재벌 대기업의 법인세 정상화가 (재정난의) 해법”이라고 밝혔다. 증세론에서 톤을 낮추고, 부자감세 철회·법인세 정상화라는 기존 톤을 유지한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도부 관계자는 “소신일지는 모르겠으나 증세론은 현재로선 너무 앞서 나간 느낌”이라며 “민감한 세금 문제를 야당이 먼저 꺼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증세론이 나오는 것은 무상시리즈 정착을 위한 복지재원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문제 때문이다. 무상급식·무상보육 논란에서 보듯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모두 돈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동차세와 지방세 인상 등 사실상 증세를 하고 있다는 게 새정치연합의 판단이다. 그러니 이럴 바에는 여야가 서로 숨기지 말고 증세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무상시리즈를 제기한 2011년의 경우 정동영 최고위원이 증세를 주장해 ‘증세 없는 무상복지’를 강조한 손학규 대표와 갈등을 빚었다.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는 증세론을 둘러싼 내부 잡음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증세가 워낙 폭발력 큰 이슈라는 대목에 고민이 있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노무현정부 시절 종부세로 대표되는 부자증세를 추진해 큰 역풍을 맞았다.
국민여론도 차갑다. 한국갤럽의 지난 9월 여론조사에서는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부자들에게 두 배 이상 과세하자는 의견이 76%였지만 정작 자신이 세금을 두 배 내겠다는 사람은 22%에 그쳤다. JTBC·리얼미터가 지난 10∼11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복지공약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48.9%, ‘세금을 더 거둬 복지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45.5%로 팽팽했다. 증세 방식은 부자 소득세 인상(42.6%)과 대기업 법인세 인상(39.6%)이 대부분이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
[기획] “여론 싸늘한데… 세금 얘기 굳이 할 필요있나”… 野 증세론 ‘일단 멈춤’
입력 2014-11-14 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