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성] 종교개혁은 기도에서 시작됐다

입력 2014-11-15 02:34
저명한 설교자이자 신학자인 장 칼뱅은 ‘기독교 강요’ 마지막 개정판에서 기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기도는 우리의 바람과 기쁨, 탄식,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털어놓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하늘 성소에 들어가는 통로이자 하나님께 그분의 약속에 대해 간구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칼뱅은 기도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의 거룩하고 친근한 대화로 인식했다. 즉 기도는 ‘내밀한 마음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내고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칼뱅을 비롯해 마르틴 루터, 존 번연, 매슈 헨리, 조너선 에드워즈 등 영적 거장들이 발견한 ‘하나님의 보화’인 기도를 깊이 있게 다룸으로써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생활을 독려한다. 청교도 신앙 연구의 권위자인 조엘 비키를 포함, 여섯 명의 신학자들은 이들 거장의 기도에 관한 논의와 삶에 대한 자료를 연구해 충만한 기도생활을 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의 상당 부분을 기도에 할애한다. 방법도 다양하다. 홀로 묵상기도를 드리고, 자녀를 위해 축복기도를 드리는가 하면, 문제를 내어놓고 금식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칼뱅의 표현대로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털어놓는, 친근한 대화로서의 기도를 주님께 드렸는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저자들은 한목소리로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단점은 기도의 결여”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가장 강력한 하늘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충만한 기도를 하기보다 껍데기뿐인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역자와 장로로의 부르심 중 절반이 기도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 시간의 단 5%도 기도에 할애하지 않는다. …교회사의 거인들의 참된 기도를 생각하면 우리의 기도는 한없이 초라하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교육을 잘 받고 근심과 의무에 마음을 덜 뺏기고 우리보다 더 경건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가장 확실한 차이는, 기도가 그들의 우선순위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기도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 그들은 은총과 간구의 영에 사로잡혀, 기도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지 알았던 기도의 사람들이었다.”(286쪽)

위대한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루 두 시간씩 하나님과 둘 만의 시간을 보냈다. 밤과 낮에 규칙적으로 기도했다. 기도가 삶의 중심축이었다. 그는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지를 묻지 말고,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선한지, 마음으로부터 나온 기도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도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기도가 자기중심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도는 모든 사람의 공동 소유인 영적 선(善)이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가 감히 기도를 박탈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에게 형제가 되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듯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바라신다.”(39쪽)

또 책에선 존 녹스가 어떻게 기도의 성경적 원칙을 설명했는지, 존 번연은 어떻게 성령으로 하는 기도를 옹호함으로써 형식주의적 기도에 맞섰는지, 매슈 헨리가 전하는 실질적인 기도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읽을 수 있다.

우리의 기도생활을 한번 돌아보자. 어쩌면 집회나 식사를 앞에 두고 몇 마디를 따라 읊조리는 게 전부인지 모른다. 하나님께 다급한 필요를 채워달라고만 부르짖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리스도인은 기도 가운데 성장한다. 기도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하나님께 내쉬는 ‘영혼의 호흡’이다. 고전에서 영적 거장들이 전하는 충만한 기도생활은 한결같다. 주님을 홀로 두지 말고 계속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되 각각의 기도 제목을 만들어 전심을 다해야 한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