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권명수] 따뜻한 남성을 향한 첫걸음

입력 2014-11-14 02:13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나면 남자가 되는 법을 어릴 적부터 은밀하게 배우게 된다. 사내는 대범하고, 강직하며, 과묵하고, 신중해야 한다. 쉽게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길을 가다 넘어지면 스스로 흙을 털며 일어나야 한다. 피가 나거나 아프다고 울면 “사내자식이 이깟 일로 울고 그러느냐”는 핀잔을 듣는다.

사내는 이런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사회적 체면과 역할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무감동, 무감정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줄로 안다. 장남이라면 여기에 짐이 하나 더 추가된다. 장남은 한 가정을 이끌 집안의 기둥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더욱 의젓하고 늠름해야 한다. 공부는 물론이고 동생들도 잘 건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가슴은 무뎌지고 일만 아는 일벌레가 되고 만다. 일중독에 빠진 장남들은 일이 없거나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남성도 따뜻한 가슴을 가질 수 있다. 소설 ‘가시고기’의 주인공 정윤호를 살펴보자. 그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팔아 수술비를 마련해 암에 걸린 자식을 구한다. 그가 이혼당한 홀아비라는 데서 충격의 강도는 더욱 크다. 물론 소설이지만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그가 시인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은 머리로 시를 쓰지 않고 가슴으로 쓴다고 한다. 가슴속에 강렬하게 떠오르는 시상을 그대로 언어로 표현하는 이가 시인이다. 이런 점에서 남성 정윤호는 자신의 가슴과 밀접하게 연결해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들에 대한 사랑에 민감하였으리라. 그는 애절한 가슴의 울림을 외면하지 못하고 생명과 같은 눈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고 생을 마쳤다.

필자를 위시하여 많은 남성들이 성숙한 남성이 되고자 노력한다. 스스로에게도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남성들은 외부적 조건만 강조하지, 내면이나 가슴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미숙하고 많지 않다.

사오정 허무 개그에 “이 세상에서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데, 가장 험하고 어렵고 오래 걸리는 여행이 뭘까요”라는 질문이 있다. 정답은 30㎝ 거리의 여행인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다.

남성은 머리에 많이 의존한다. 머리를 사용해 일과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그렇다. 차가운 머리와 이성의 영역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친밀한 인간관계에는 가슴의 표현이 더 요구된다. 참된 인간관계는 지적 능력, 외부 조건, 매력보다는 자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속내를 주고받는 마음의 대화가 중요하다.

따뜻한 남성을 향한 길은 어색하고 힘들다. 하지만 그 첫걸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이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서 머물면 안 된다. 가슴에 담긴 얘기를 어색하고 쑥스럽더라도 조금씩 실제로 해보는 시도가 중요하다. 든든하고 성숙한 남성, 다정한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려는 뭇 남성들이여, 나와 우리 모두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시급하고도 신성한 여정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저만치서 행복이 손짓하고 있다.

권명수 교수(한신대 목회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