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참여한 고위 관계자는 타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농업 개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 농업 분야 협상에 임했다”면서 “이를 감안하지 않고 한 것이 한·미 FTA”라고 털어놨다. 농업은 단순히 주식을 공급하는 역할이 아니라 환경 등 복합적인 기능이 있는데 한·미 FTA에서는 이런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한·중 FTA는 어떨까. 정부가 농산물 보호를 위해 공산품에 대한 공세를 접었다 할 만큼 농산물 시장 수성에 성공했다는 게 중평이다. 그러나 시장 개방을 최대한 막았다고 끝이 아니다. 실패한 한·미 FTA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농업이 한·중 FTA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액 53억5000만 달러 중 FTA를 활용한 수입액은 39억5000만 달러였다. FTA 활용도는 74%나 됐다. 반면 같은 기간 대미 농축산물 수출액 5억2000만 달러에 대한 FTA 활용도는 46%(2억4000만 달러)로 채 50%를 넘지 못했다. 대미 수출액이 수입액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FTA로 인해 낮은 관세를 활용하는 것도 우리보다는 미국이 훨씬 높았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또 미국산 신선과일 수입이 증가하면서 국내 과일의 생산 구조도 변화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오렌지와 경합이 우려되는 감귤과 딸기 등의 출하기가 오렌지 수입기인 12∼5월을 피해 앞당겨지거나 미뤄지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실제 오렌지 수입 증가 등으로 미국산 과일의 봄철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1년 7.9%에서 지난해 9.1%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 이후 농가수입 보전 대책 등 수세적 정책은 많았지만 대미 수출 확대 등 공세적으로 이를 이용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한·중 FTA에서는 보다 공세적인 수출 전략을 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중 FTA의 우리 측 농산물 양허(개방)안보다 훨씬 개방 폭이 큰 중국 시장을 또 하나의 내수시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중국 측의 농축산물 양허 품목은 1029개(91%)나 된다.
이병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높은 관세 등으로 대중 수출 농식품의 주요 대상은 상류층에 국한됐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13억 거대 시장의 중산층까지 우리 농식품의 수요층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수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대중국 수출 확대를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조연’ 역할이 요구된다. 우선 품목별원산지결정기준(PSR)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농산물 수출 업체는 영세한 경우가 많아 원산지 증명에 애를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해 만든 가공식품 업체가 이런 비관세 장벽에 막혀 수출이 힘들어지지 않도록 인프라 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우리 식품의 상징인 김치의 대중국 수출 길을 조속히 뚫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FTA로 중국산 김치의 수입관세는 인하되는데 우리 김치는 위생 기준 문제로 수출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농식품부 이동필 장관은 전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김치의 위생 기준 완화를 위해 향후 협의 과정에서 중국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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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14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