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룡마을 화재로 임마누엘순복음교회 전소… “불 탄 자리에 교회 다시 세워졌으면…”

입력 2014-11-14 02:31
이병주 목사(왼쪽) 부부가 13일 화재로 불에 타 없어진 교회터를 둘러보고 있다. 이 목사 부부 뒤로 철제 십자가와 교회 건물 골조 일부가 보인다. 허란 인턴기자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초입의 마을회관. 지난 9일 발생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주민들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 가운데 초췌한 모습의 이병주(50·임마누엘순복음교회) 목사와 이동숙(46) 사모도 눈에 띄었다. 이 목사 부부는 이번 화재로 132㎡(약 40평) 규모의 예배당과 사택으로 사용하던 198㎡(약 60평) 규모의 선교관 건물을 모두 잃었다.

이 목사와 함께 찾은 구룡마을 8지구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불탄 교회 터엔 검게 그을린 십자가와 앙상한 건물 골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예배당 자리에는 불에 타다 만 성경공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쪽에는 양파와 무 같은 타다 만 채소들도 보였다. “오후 예배를 드린 뒤에 성도들에게 나눠줄 예정이었는데, 대피하느라 그대로 놔두고 나왔지요.”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불이 난 날은 주일이었다. 오후 찬양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이 귀가할 즈음이었다. 한 교회 권사가 손짓을 하며 “불이야”를 외쳤다. 이 목사는 교회건물에서 70∼80m쯤 떨어진 주택에서 불길이 번져오는 것을 목격했다. 이미 화재신고가 된 것을 확인한 그는 교회건물 주변의 LPG 가스통 밸브를 잠그는 등 안전 조치를 한 뒤 소방서의 화재 진압을 기다렸다.

“저는 100% 진압이 이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강풍을 타고 불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교회와 사택까지 덮치더라고요. 연기에 질식될까봐 옷가지 하나도 가져 나오지 못했어요.”

이 목사 부부가 구룡마을에서 목회를 한 지는 올해로 5년째. 이 목사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다소 늦게 신학에 입문한 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강원도 양양에서 개척해 목회를 하다 2009년 상경, 누나인 이성금(70) 원로목사가 1990년대 초반에 개척한 구룡마을 교회로 부임했다.

이 목사는 주일 오전·오후 예배와 새벽기도, 매일 오전 9시 기도모임을 이어왔다. 매주 3차례 마을 초입에서 빵 급식 봉사와 주일 채소나누기 등 섬김 사역을 펼쳐왔다. 전임 목회자가 10년 넘게 무료급식 등 섬김 목회에 힘써온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40명 남짓한 교회 성도들은 65세 이상의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이번 화재로 교회 성도 가운데 세 가정도 집을 잃었다. 이 목사는 “다른 것보다 교회가 무너진 자리에 교회가 다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며 기도를 요청했다. 이 목사는 오는 16일 주일 교회 터에 임시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