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1년 전 참사의 흔적을 발견할 순 없었다. 학교는 예쁘고 평화로웠다. 화단엔 꽃들이 피어있었고 시소 그네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는 앙증맞아 보였다. 건물 다섯 동은 산뜻한 민트색 혹은 흰색 페인트로 도색돼 있었다.
이곳은 필리핀 레이테주(州) 톨로사시(市) 외곽에 위치한 올롯초등학교. 지난해 11월 8일 초대형 태풍 하이옌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한 곳이다. 지붕은 강풍에 모두 뜯겨나갔고 창문 역시 전부 깨졌다. 화단은 쑥대밭이 됐으며 교실은 침수됐다.
지난 9일 올롯초등학교를 방문해 이 학교 교사들과 아이들을 만났다. 6학년인 셰드리 콜라시토(11)군은 “1년 전 태풍이 왔을 땐 너무 무서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비가 정말 많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전부 집에서 대피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많은 국제단체들이 도와줬습니다. 학교도 새로 지어줬고요.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아직 저희를 사랑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하지만 교사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학생들이 여전히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6학년 담임교사인 에마린 팔라니아(44·여)씨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도 태풍 트라우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경우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지만 요즘도 비가 많이 오거나 천둥이 치면 깜짝 놀라 책상 밑으로 숨거나 비명을 지릅니다.”
올롯초등학교는 태풍으로 인한 희생자는 없었지만 교사(校舍)가 전부 망가지면서 수업에 차질을 빚었다. 지난 7월까지는 학교 마당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했다. 이 때문에 1∼3학년은 오전, 4∼6학년은 오후에 각각 2시간씩만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정상 수업’은 한국기아대책의 도움으로 가능해졌다. 기아대책은 이 학교 건물 다섯 동을 복구해줬다. 이곳 외에도 기아대책이 하이옌 피해지역에 재건·보수한 학교는 6곳, 교회는 4곳이나 된다. 기아대책은 피해지역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미술·음악·연극치료 등 다양한 ‘정서 케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현지에서 사역 중인 기아봉사단원 강병기(41) 선교사는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직도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화를 피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정서 케어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해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톨로사(필리핀)=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태풍이 지나간 교정, 다시 꽃이 피었습니다… 하이옌 피해 필리핀 톨로사 올롯초등학교
입력 2014-11-14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