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법원의 ‘법관 순혈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최고 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이 고위직 법관(판사) 출신 일색이어서 급변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혈주의 비판은 그러나 대법관이 한두명씩 교체될 때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가 금방 잠잠해지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재적의원 절반에 육박하는 146명의 여야 의원들이 대법관의 2분의 1을 판사 출신이 아닌 법조인으로 임용토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순혈주의 타파는 법원 인사 혁신을 통한 사법부 개혁의 핵심 과제에 속한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관 임명제청 대상으로 20년 이상 경력의 판사·검사·변호사 및 변호사 자격을 가진 공공기관 종사자와 법학교수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고위직 판사가 임명제청된다. 현재의 대법원 구성을 보면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이 전원 고위직 판사 출신이다. 거기다 12명이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2012년 퇴임한 안대희 대법관 이후 3년째 검사 출신 대법관이 배출되지 않고 있으며, 올해에는 법학교수 출신인 양창수 대법관 후임에 권순일 법원행정처 차장이 임용됐다.
대법원은 대법관의 순혈주의에 대해 최종심 법관으로서 법 해석과 재판 능력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대법관 1명이 연 평균 3000건의 송사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판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순혈주의에 따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의원들이 법 개정안 제출 이유로 제시한 것처럼 법원이 재판에서 복잡다기한 사회적 가치와 건전한 국민 법 감정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막말 판사, 유전무죄 판결, 황제 노역 판결 등이 나온다.
대법관이 판사들만의 승진 목표로 간주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젊은 판사들이 법률 수요자인 국민을 생각하기보다 법원 인사권자들만 쳐다보고 재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이 우리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함에도 평생 판사직을 유지하다 보면 대법관에 오른 사람은 지나치게 보수적인 성향을 갖는 경우가 많다.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변호사와 유능한 검사나 법학교수가 대법원에 들어갈 경우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판결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대법관이 될 만한 수준의 변호사나 검사, 법학교수라면 재판 능력은 단시간에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법 개정안처럼 ‘2분 1’을 당장 의무화하는 것은 무리다. 14명 중 7명을 비 판사 출신으로 임용하려 할 경우 적임자 고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법을 개정하되 단서조항을 넣어 비 판사 출신 대법관을 서서히 늘려가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젊은 변호사와 검사, 법학교수들이 대법관이 되기 위한 꿈을 키워나가지 않겠는가.
[사설] 대법원의 ‘법관 순혈주의’ 부작용 방치 안 된다
입력 2014-11-14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