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말기로 부활주일을 앞둔 토요일로 기억된다. 그날 교회 청년부 강의를 끝내고 내려오는데 후배 전도사가 다가오더니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분들이라고 했다.
교회 밖으로 나가니 감색 양복을 입은 건장한 두 사람이 나에게 잠시만 좀 보자고 했다. 위세에 눌려 따라나섰는데 큰 길로 나오더니 미리 세워둔 검은색 세단 뒷좌석에 나를 밀어넣었다. 내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붙잡혀 간 곳은 당시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던 남산 중앙정보부였다.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하던 나를 취조실같이 생긴 작은 방으로 데려갔는데 점퍼를 입은 한 사람이 들어와 나를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이 새끼가 이용원이야?”하면서 내가 앉은 회전의자를 냅다 걷어찼다. 충격으로 몸이 의자와 함께 한 바퀴 돌게 된 나는 화가 치밀었다.
“이용원 목사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시민을 이렇게 막 대해도 됩니까?”
나도 눈을 똑바로 뜨고 큰소리로 항의하자 “야 이 새끼 봐라. 난 2국 6과장인데 네놈이 잘못한 것을 몰라?”라고 다그쳤다.
당시 난 우리나라의 내일을 걱정하는 젊은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모임’을 만들어 함께 기도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우리 회원 목사 49명이 횃불데모를 하고 감옥으로 자진 투옥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이 시행되기도 전에 발각된 것 같았다. 서슬 퍼렇던 유신시절이라 난 다시 눈을 감고 기도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내게 임해 두렵지 않았고 ‘말의 권세’를 주신다는 믿음이 왔다.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됐다. 나는 평소에 생각하던 소견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구한 역사의 한민족은 우수한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의 장점을 살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의도로 젊은이들을 깨우고 교육하자는 취지로 모임을 갖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사실 영구 집권하려는 독재정치야말로 잘못된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는 저를 한밤중에 이렇게 잡아오는 정권을 하나님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엔 내 기세에 상대가 눌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 제가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을 취조했습니다. 밖에서 큰소리 쳐도 이곳에 오면 모두들 기가 죽는데 목사님처럼 당당한 분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제가 보고서를 잘 쓸 테니 이해하시고 좀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이곳에서 나를 목사님으로 대접해 주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말의 능력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나에 대한 보고서가 잘 올라갔는지 난 이곳에 온 지 이틀 만에 “다시는 목사들을 규합해 단체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내보내주겠다”는 언질을 받았다.
난 그런 서약을 할 수 없다고 버텼는데 함께 끌려온 친구 목사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더니 담당자가 그럼 당분간 안 하겠다고 서약하면 풀어주겠다고 해 지문을 찍고 나왔다. 유신시대 이곳 남산에 끌려온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우리 시대 어두운 한 단면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후유증은 있었다.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나를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조종남 학장은 ‘교육을 잘 시킨다’는 조건으로 그 요청을 무시했다고 내게 이야기해주셨다. 그 후에도 내가 관여가 되지 않은 일로도 붙잡혀 가는 일이 생겼다. 난 혼란한 한국을 좀 떠나 있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해외에서 신학적으로 더 공부하고 싶은 열망도 있었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용원 (8) 유신 반대 ‘한모임’ 사건으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입력 2014-11-14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