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다. 조금 가다가 기사가 물었다. “내 운전 솜씨 어때요? 택시운전 두 달째예요.” 이틀보다는 마음 이 놓이지만 조금은 불안했다. 그러나 그 기사는 더 불안한 말을 꺼냈다.
“택시는 안 되겠어요. 아이가 둘이거든요. 트럭으로 바꿀까 해요. 1억원이 더 필요해요. 트럭을 사면 세 배는 더 벌 수 있거든요.”
묻지도 않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결국 그의 말에 끌려 말했다. “그러나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이들에겐 돈도 필요하지만 아빠의 건강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는 마흔둘이라 했다. 이런 젊은 날에 좀 많이 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은 부족할 것이고 위험 부담도 있지만 그게 젊음이지 않나요. 나는 돈을 벌고 싶어요”라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문을 꽉 잡았다. 그의 욕망만큼 나는 위태로웠다. 마음도 울먹거렸다. 아이 둘의 가장이 이 사회에 처한 저 소망 저 욕망 저 목표의식이 왜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불안한가. 그의 의욕은 권할 만하다. 그러나 세 배의 돈이 세 배의 위험으로 들리는 내 귀를 나는 막았다. 내 아들이라면 안고 울고 싶은 그 마흔둘의 미래가 지나치게 울퉁불퉁해서 안전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아프게 본다. 나는 말한다.
“조금 덜 벌어도 택시가 안전하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기사가 펄쩍 뛰며 “안 돼요. 이 택시로는 밥도 못 먹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갑자기 거리가 고속도로가 생활전선의 사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엾다. 그러나 이 기사보다 더 우울하고 위태로운 거리에 몰린 마흔 살 생의 상처가 흔하고 흔하다는 생각을 하며 울적했다. 내릴 때 요금에서 2000원을 더 보탰다. 그 2000원은 더 깊이 생각해 보라고 의욕보다 현실의 이익이 뭔지 더 생각해 보라는 내 나름의 의미였다.
세 배에 현혹되지 말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돈을 버는 시간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라고. 불안한 나는 내내 그 택시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은 그 택시의 앞에도 뒤도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위태로운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이천원의 의미
입력 2014-11-14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