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한국시를 꽃피워낸 광양 마루밑

입력 2014-11-14 02:10
윤동주 시가 묻혀 있던 정병욱 가옥. 광양시 제공

전남 광양 섬진강 하구의 어느 신작로 옆에 양철지붕을 얹은 목조 가옥이 있다. 이 가옥에 쓰라린 우리의 한 시대가 잠겨 있다. 산 아래 바짝 붙은 이 집의 담벽은 안내판 두 개로 오는 손님을 맞는다. 하나는 ‘시인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 가옥’. 또 하나에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스스로 자신에게 기원했던 유명한 ‘서시’.

아직도 우리들에게 절절한 이 시는 나라 잃은 백성의 정서를 애절하게 담아 사랑을 받는다. 윤동주의 삶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서사시이고, 한 폭의 기록화이다. 북간도 출생, 연희전문, 일본 릿쿄대학, 2년형 선고, 후쿠오카 형무소 수감, 생체실험. 윤동주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시구에 실어 우리 시대로 보냈다.

윤동주는 직접 쓴 시집 3권 중 한 권을 하숙집 후배 정병욱에게 주고 결코 돌아오지 못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친필 시집은 다시 학도병으로 끌려가던 아들의 부탁으로 광양 정병욱 어머니가 마루 밑 그윽한 땅속에 간직했다. 이 땅속에서 부활한 시집이 1948년에 정음사에서 출판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백두산 북쪽 끝자락 용정 출신 윤동주와 남쪽 끝자락 광양의 정병욱이 만나서 한국 시문학사의 꽃을 피운 이 전설적인 가옥은 2007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