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층계급 혐오 부추겼나

입력 2014-11-14 02:19

하층계급, 무지한 사람이란 뜻인 ‘차브(Chavs)’는 2005년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재됐다. 어린이를 의미하는 19세기 집시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하층계급을 폄하하거나 싸구려 문화를 즐기는 세대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 영국의 젊은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30)는 2011년 이 책을 통해 차브 현상을 수면 위로 띄웠다. 당시 영국에선 ‘길거리에서 만나는 차브를 공격하는 법’ ‘차브를 마주치지 않는 루트가 담긴 여행상품’ 등 이들을 향한 비아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저자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차브를 먹잇감으로 이용해 계급 혐오를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복지 예산을 축내면서 노동을 회피하고 TV 리모콘을 돌리며 소파에서 빈둥거리는 차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 이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탈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단단했던 노동계층은 사라지고 비정규 일자리가 넘쳐나게 됐다.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 살렸던 제조업을 정리하고 소수가 이익을 독식하는 금융 산업에 전념한 결과다. 책은 가난을 동정하던 사회가 가난을 조롱하는 사회로 변해가는 현실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짚어낸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여러 군데 보인다. 미국 뉴욕 타임즈의 ‘최고 논픽션’, 영국 가디언지의 ‘올해의 책’으로도 꼽혔다. 이세영·안병률 옮김.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