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 이동훈 경제부장이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을 만나다

입력 2014-11-14 02:29 수정 2014-11-14 14:11
최근 연임에 성공한 김재수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이 지난 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며 위기에 처한 우리 농업의 발전 방안을 역설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아이에게 먹일 이유식 재료를 구입하는 엄마들은 한우를 고집한다. 채소류, 과일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생선에 대한 원산지 확인은 더욱 철저해졌다. 꼭 아이용 식사가 아니더라도 한국 주부 대부분은 사정만 허락한다면 국산 농축수산물을 선호한다. 국산 농축수산물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더 높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이러니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 때부터 숱한 자유무역협정(FTA), 내년에 다가온 쌀 시장 개방까지 우리 농업 시장의 개방 강도가 높아질 때마다 정부가 다짐했던 우리 농업발전 방안은 답보상태인 것이다. 생산되는 제품은 우수한데 유통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세하고 노령화되고 가격은 제대로 쳐지지 않아 생기는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

국민일보가 지난 4일 만난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이 대화 내내 강조한 것도 이 모순을 극복해보자는 것이었다. 김 사장은 1980∼2000년대까지 농림부 공무원으로 실무를 두루 경험한 데 이어 농촌진흥청장,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까지 거쳤고 aT 사장 자리도 이례적으로 최근 10여년을 통틀어 공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연임을 하게 된 농업 전문가다. 그는 우리 농산물과 식품의 우수성을 최대한 살려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농업의 낙후성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개방으로 국내 농업에 위기가 닥치는 동시에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어 우리 식품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을 진실로 변화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 FTA 체결을 앞두고 있다(인터뷰 이후인 10일 실질적 타결을 이룸). 농업 분야 우려가 높은데 어떻게 대처해야겠나.

“한·중 FTA를 보면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시장에 중국산 물품이 상당수 들어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은 농산물 기준으로 이미 44억 달러 적자다. 일차적으로 최대한 민감 품목은 막아야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농업이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실제 체결된 협상 내용에서 주요 농산물은 상당수 양허 제외됐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우리는 가공·중개 무역 수출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원재료 가격은 워낙 낮아서 그 자체로 경쟁은 안 된다. 우리는 싼 원재료를 들여와 이를 다시 가공해 역수출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야 한다.”

-수출이 길이라는 뜻인가. 국내 농가소득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농가소득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식의 비판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 농가도 스스로 변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고급화를 통한 수출 전략이 아니고서는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국내 소비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산이 많이 되는 풍년이 반가울 수 없지 않은가. 양파만 하더라도 올해 과다 생산량이 사상 최대다. 기후 여건도 있었지만 절대적으로 국내 소비가 안 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급화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면 답이 없다. 지금 시장 개방으로 인해 국내 농업이 위기인 것도 사실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한류 등으로 인해 동남아 지역 수출,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지금이 위기이면서도 기회라는 얘기다.”

-고령화되고 영세한 농민들에게 이런 산업화 대책은 와 닿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농업은 세대교체기다. 고령·영세 농민들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따라가기 벅찬 것도 현실이다. 이 때문에 현재 정부의 농업정책이 상당 부분 농가소득 보전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농업을 살리려면 ‘먹는 농업’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농업정책 무게가 연구·개발(R&D) 투입 등에 실어야 한다. 유통, 가공, 저장, 신소재, 약품, 화장품 등까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길이 매우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적절한 예가 될 듯하다. 우리처럼 작고 자원이 없는 네덜란드가 농산품으로 가진 것이라고는 꽃밖에 없는데 농업 수출 2위 국가가 된 것도 농업을 R&D를 통해 고부가가치화한 덕분이다. 네덜란드 R&D 클러스터인 푸드밸리(food valley)를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전북 익산에 식품 클러스터를 조성했는데 새만금 지역과 aT가 내려간 나주 혁신도시 등을 엮어서 ‘전남북 식품 클러스터’로 육성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동북아 지역에 고급 농산물·식품을 공급하는 거점으로 만들면 전망이 있다고 본다.”

-수년째 수출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크게 개선되는 느낌은 없다. 전략이 있나.

“농산물 수출 전략이 지금까지처럼 현지에 가서 박람회 하고 한류 연예인 홍보대사를 임명하는 등의 1차적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 2차적 전략으로 점프해야 할 때다. 중국 시장을 보면 땅은 매우 넓은 데 비해 내륙 물류가 워낙 열악하다. 어느 큰 도시 가서 홍보하고 오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최근 aT가 중국 최대 온라인 B2B 시장인 알리바바와 전략적 제휴(MOU) 맺었는데 이게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자상거래, 홈쇼핑 등을 뚫고 여기에 론칭하는 우리 농산물과 식품을 꾸준히 품질관리해 신뢰를 높여야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채소값 폭락이 문제다. 농산물 수급문제 개선에 큰 진전이 없어 보인다.

“근본적으로 농산물은 수급을 맞추기 힘든 점이 있다. 그래도 그동안 농업 관측 등에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생산량 등에 개입하는 시기와 방법, 기본적인 통계 등이 보완돼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기도 하다. 유통 상인 등과의 머리싸움에서 지면 수급난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공무원들이 자꾸 바뀐다는 것이다. 농산물 수급 제도와 같은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해결해가려면 최소한 2∼3년은 한 자리에서 봐야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데 현재 공무원 인력 운용을 보면 한 자리에 1년도 못 있는 일이 허다하다. 일종의 전문관 제도 도입 등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