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불법 스포츠토토 수렁에 빠진 청소년들… 부모 돈 몰래 인출 베팅

입력 2014-11-13 02:58 수정 2014-11-13 14:01

고교 2학년 A군(17)은 지난 8월 있지도 않은 노트북을 팔겠다며 인터넷 카페 ‘중고나라’에 허위매물을 올린 뒤 60만원을 받아 챙겼다. 불법 스포츠토토로 돈을 불려 볼 심산이었지만 몽땅 날렸다. 구매자가 물건을 보내라고 독촉하자 다급해져 자기가 쓰던 컴퓨터를 35만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컴퓨터를 판 돈으로 도박을 해 60만원도 갚고, 자신의 컴퓨터도 장만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95만원은 고스란히 허공으로 사라졌다. A군은 자신의 컴퓨터도 보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8개월 동안 800만원을 탕진했다. 물품거래 사기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상황이 돼서야 A군은 자신이 도박 중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교 3학년 B군(18)은 지난 8월 15일 아버지 통장에 손을 댔다. 나흘 동안 500만원을 빼내 불법 토토사이트에 모조리 베팅했다. “1만∼2만원만 따면 채워 넣어야지”라던 생각은 단 한번도 실현되지 않았다. 돈을 모두 날린 날 학교도 가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다가 형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B군의 형은 최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전화를 걸어 “몇 십만원도 큰돈인데 수백만원을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는 사실에 가족이 충격을 받았다”며 “동생의 충격이 너무 큰 것 같아 혼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대처법을 알려 달라”고 물어왔다.

중·고교생들이 불법 도박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한번의 호기심이 심각한 중독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인데다 인터넷에도 능숙해 쉽게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발을 들인다. 교육 당국의 관리가 시급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지난해 9월 개원 이후 1년간 받은 도박 유형별 중독신고 중 스포츠토토가 41.1%로 가장 많았다고 12일 밝혔다. 카지노(15.5%)와 카드(13.0%) 경마(7.5%) 등이 뒤를 이었다.

도박중독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2만4373건의 전화상담 가운데 자녀들 때문에 부모가 상담을 요청한 경우가 15.9%에 달했다. 본인의 도박문제를 상담한 경우는 42%, 배우자가 상담을 한 것은 19%였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이광자 원장은 “도박 중독자의 연령대가 10대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며 “중독 예방사업의 초점을 청소년, 대학생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스포츠토토 등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주된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로 조사됐다. 지난 4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락형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이유로 ‘복잡한 일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20.1%)가 가장 많았다. 복권의 경우 ‘혹시 돈을 따지 않을까 싶어서’(53.0%), 내국인 카지노는 ‘여가 생활이나 레저목적에서’(34.2%)라는 대답이 많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자녀의 도박 중독이 의심될 경우 무료 상담센터를 찾으라고 권한다. 국번 없이 1336으로 전화를 걸거나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치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재정·법률 상담도 무료로 제공한다. 이 원장은 “도박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도박에 쓰는 돈이나 시간이 늘어난다면 도박중독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