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실버타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적응 어려움 겪는 노인도 많았다

입력 2014-11-13 02:23 수정 2014-11-13 16:02
대다수 ‘골드 싱글’은 부모형제가 세상을 떠나고 늙어 홀로 남게 되면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리라 생각한다. 비슷한 형편의 노인들과 의지하며 지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다. 과연 실버타운이 그들의 행복한 노후를 보장해줄까.

지난달 23일 경기도의 A실버타운.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건물 로비에서 노인 5∼6명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천장에 설치된 고급 샹들리에 조명이 눈부셨다. 오후 2시쯤 한 간호사가 “오늘 병원 가실 분이요”하고 찾자 6명이 나와 건물 앞 차량에 탔다.

81세인 B씨는 열흘 전 노환에 시달리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다. 자녀 6남매가 돈을 모았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게 좋은데, 자식들이 나 편하게 해주려는 거니까….” 이곳에서 보낸 열흘간의 소감을 묻자 그는 “여기 오니까 내가 완전히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아직 아닌데”라고 했다.

산책을 하던 C할머니(89)는 2011년 바지에 소변을 종종 지렸다고 한다. 사위와 아들들이 1년 전 그를 이곳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사는 게 참 어렵다”고 했다. “누구랑 만나서 얘기도 하고, 상담도 하고 싶은데 말 섞을 일이 별로 없다. 빨리 하나님께 가야 하는데….”

이 실버타운의 1∼4인실 한 달 거주 비용은 100만∼400만원이다. 식사·세탁비 등은 들지 않지만 병원비나 약값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주로 공무원, 교수, 대기업 고위직 출신 등이 찾아온다. 편할 것 같은데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한 직원은 “여기 계신 분 중에 절반 정도는 노인성 우울증을 앓고 있고, 이곳에 와서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며 “자녀가 자주 찾지 않아 가족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다”고 전했다.

실버타운 중에는 수억원을 내고 방을 아예 분양받는 입주형도 있다. 딸려 있는 식당가에 가서 식권이나 돈을 내고 밥을 먹고 주기적으로 의사·간호사가 건강검진을 해준다. 서울의 호화로운 입주형 실버타운은 피트니스센터, 스파, 북클럽 등 편의시설과 24시간 의료 시스템을 갖춘 곳도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실버타운은 아직 노년의 해법으로 정착하지는 못했다. 대기업 임원 출신 김모(77)씨는 서울의 한 입주형 실버타운에 들어간 지 석 달도 안 돼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외로움 때문이다. 실버타운에서 운영하는 여러 모임에도 나가봤지만 적응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 모아놓고 ‘자 이제 마음을 여세요’ 하는데, 그런다고 마음을 툭 터놓기가 쉽냐”고 토로했다. 다음 달에 자녀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서울의 한 실버타운 관계자는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는 입주민도 있긴 하다”며 “장기적으로 실버타운이 많이 늘어 노년문화로 정착되면 그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훈 양민철 기자 zeitgei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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