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피해 복구 아라우부대 부대장 이철원 대령 “6·25때 필리핀의 희생, 땀으로 보답했어요”

입력 2014-11-13 02:25
10일 필리핀 팔로에 있는 아라우부대에서 만난 이철원 대령. 한국기아대책 제공

이철원(51) 대령은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백화점에 들렀다 과거 필리핀에서 인연을 맺은 한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1998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합동참모대학에서 수학하던 시절 친분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해 귀국한 뒤 10년 넘게 교류가 없었다.

선교사 부부는 휴가를 내고 잠시 한국에 들렀다고 했다. 이 대령은 이들과 잠시 안부를 주고받은 뒤 헤어졌다. 그런데 문득 그의 뇌리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갑자기 저 부부를 만나게 된 걸까. 혹시 하나님의 계시인가. 필리핀에 가서 무언가를 하게 될 것이란 예고인가.’

그리고 2∼3주가 흘렀다. 11월 8일이었다. 필리핀 중부지역 일대가 ‘슈퍼 태풍’ 하이옌으로 쑥대밭이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국방부 검열계획과장이던 이 대령에게 상부의 지시가 떨어졌다. “아라우부대 부대장을 맡아 책임지고 필리핀 피해지역 복구 작업을 완수하라.”

10일 하이옌 피해지역인 레이테주(州) 팔로시(市)에 있는 아라우부대에서 이 대령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아라우부대는 다음 달 17일 철수한다. 이 대령은 약 11개월 전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당시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주둔지에 막사를 비롯한 주거 시설이 없으니 처음 2개월간 부대원 520여명과 LST(해군상륙함)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우기(雨期)여서 거의 매일 비가 내렸죠. 주둔지 건설 작업과 구호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아침마다 주님께 기도부터 드린 뒤 일과를 시작했지요.”

이 대령은 해외에서 타국과 수차례 작전을 진행한 연합작전 전문가다. 육사 42기로 임관한 그는 동티모르 522평화유지단 작전과장(2000∼2001), 이라크 자이툰부대 대대장(2004∼2005)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아라우부대는 그가 과거 통솔한 부대들과는 ‘성격’부터 달랐다. 재해 복구가 목적이었고 창군 이후 재해 당사국 요청을 받고 파병된 최초의 국군 부대였다.

“전투나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파병된 부대는 의외로 통제하기가 쉬워요. 웬만해선 부대원들이 주둔지를 벗어날 일이 없거든요. 하지만 아라우부대는 달랐습니다. 부대원들이 주둔지를 벗어나 매일 현지인과 접촉하며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고의 가능성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돌봐주신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작은 교통사고도 난 적이 없어요(웃음).”

아라우부대의 슬로건은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이다. 여기엔 한국전쟁 참전국인 필리핀에 대한 보은의 뜻이 담겨 있다. 아라우부대가 약 11개월 동안 재건한 학교나 교회, 관공서는 60곳이 넘는다. 부대 이름 ‘아라우(Araw)’는 필리핀어로 ‘태양’ ‘희망’ 등을 의미한다.

충남 예산 출신인 이 대령은 불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집에는 불상이 있었고 부모님은 매일 아침 예불을 드렸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건 서른 살이 됐을 때다. 군 생활에 지쳐 있던 그는 육사 동기생을 따라 우연히 교회에 갔다. 이 대령은 “출석한 지 한 달 만에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십일조를 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빨리 신앙을 키웠다”고 말했다.

이 대령은 다음 달 한국에 돌아오면 필리핀에서 보낸 1년을 정리한 회고록을 발간할 계획이다. 인세 중 일부는 레이테주로부터 한국기아대책이 위탁받아 운영하는 ‘아라우 장학재단’에 기탁하기로 했다.

팔로(필리핀)=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