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독도 블랙리스트

입력 2014-11-13 02:10

블랙리스트(blacklist)는 생과 사를 갈랐다. 기원은 1660년 영국의 찰스 2세다. 왕정복고로 복위한 그는 청교도 혁명 때 부왕 찰스 1세의 처형에 관여한 심판관 등 58명을 추렸다. 블랙리스트라 명명된 이 명단에 포함된 인물 중 13명을 처형했고 25명은 종신형에, 나머지는 석방했다.

명칭은 달랐지만 블랙리스트는 동서고금을 막론했다. 계유정난 당시 한명회의 살생부(殺生簿)는 참혹했다. 수양대군에게 올린 그의 살생부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됐다. 생부(生簿)에 포함된 신숙주 등은 영화를 누렸지만 살부(殺簿)에 올랐던 김종서 황보인 등은 처참하게 척살됐다. 중종 때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조광조 등 사림들의 기록이 담긴 기묘당적(己卯黨籍)도 살생부에 다름 아니다.

블랙리스트는 현대로 이어졌다. 19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트랜스발의료조합은 치료비를 선납하지 않는 환자들의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고 치료를 거부했다.

현대사에 대표적인 블랙리스트는 1940년대 말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영화인을 적발한다는 명분으로 작가와 영화인 151명의 명단을 만들었다. 월트디즈니와 로널드 레이건이 앞장섰다는데 희극배우 채플린, 명화 ‘로마의 휴일’의 극작가 돌턴 트럼보 같은 인물이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다. 한때 국내서는 노조 활동자의 취업을 막는 비인간적 수단으로도 널리 활용됐다.

지난달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 저우룬파, 류더화, 량차오웨이가 중국 본토 활동이 금지되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성형외과 블랙리스트도 있다.

엊그제 가수 이승철의 일본 입국이 불허되면서 ‘독도 블랙리스트’가 회자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독도 공연에 참가한 한국 연예인의 입국을 막기 위해 만든 명단이 있다는 것이다. 정황으로 볼 때 개연성이 낮지 않다. 노래는 국경을 뛰어넘는 언어고, 가수는 갈등을 풀어주는 메신저다. 문화를 한낱 정치의 장막으로 막으려는 일본 정부, 치졸하다. 우리도 일본의 혐한단체 ‘재특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야 하나.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