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에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대화가 한·일 관계를 변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0일 밤(현지시간) APEC 갈라(Gala) 만찬장에서 아베 총리와 예상 밖의 만남을 가졌다. 군 위안부 문제 등 양자 현안의 진전이 없어 만남 자체가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 주위를 더 놀라게 했다. 아베 총리는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중·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로 냉랭한 대접을 받자 다시 박 대통령을 상대로 관계 진전을 이뤄보려 안간힘을 쓴 것으로 여겨진다.
두 정상은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에 만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정상은 10일 밤) 다양한 양자 현안을 논의했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장급 협의가 잘 진전되도록 독려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두 정상 간 대화는 통역을 통해 이뤄졌다. 세세한 대화 내용과 분위기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았지만 위안부 문제, 한·일 관계 전반, 북한 문제 등이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만남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대회장 입장 순서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21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APEC 정상회의에서 영문 알파벳으로 한국(Korea)은 일본(Japan)의 바로 뒷 순서다. 박 대통령은 오·만찬에는 아베 총리 바로 옆 자리에, 회의장 입장 땐 바로 뒤에 서게 된다.
두 정상은 11일 업무오찬 자리에서도 나란히 앉았지만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오늘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어제(10일) 충분히 교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화가 곧바로 한·일 관계의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긴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양국 현안의 상징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4차례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도 진전을 못 이루고 있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현안 해결 노력이 없는 한 관계 진전은 난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대화 자체의 물꼬를 튼 만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여러 기회에 일시 조우하거나 비공식적 대화를 이어갈 가능성은 높다. 박 대통령은 16일까지 미얀마, 호주에서 열리는 아세안+3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아베 총리와 계속 함께 참석한다. 우리는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냉대를 받아온 아베 총리가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베이징=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朴-아베 ‘짧은 대화’… 벌어진 틈 그대로
입력 2014-11-12 0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