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원 선고] 법원 “피해자들 사망 용인했다고 보기 어려워”

입력 2014-11-12 03:20
광주지방법원에서 11일 오후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리기 전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이 피고인석에 앉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광주=사진공동취재단
법원은 세월호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던 이준석(68) 선장 등의 ‘승객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까지 생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유일하게 기관장 박모(53)씨의 살인혐의는 유죄가 선고됐지만 부상한 동료를 눈앞에서 보고도 구하지 않은 행위에 한정됐다. 법원은 이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은 대신 유죄로 인정된 유기치사 등 나머지 죄명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최고형을 선고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물었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 없었다”=광주지법 형사11부는 이 선장 등 일부 승무원의 살인혐의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했다. 부작위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크게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죽을 수 있다’는 인식에 이어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뒤따라야 한다. 피고인의 마음 속 문제이기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여러 정황 등을 토대로 당시 피고인의 의사를 추정해야 한다.

재판부가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은 근거는 크게 2가지다. 우선 이 선장 등은 자신들이 구조하지 않아도 해경이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고 직후 진도VTS와의 교신에서 “승객 450명을 비롯해 총 인원이 500명쯤 된다”며 해경에 빨리 와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피고인들이 승객들과 함께 구조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실제 사고 40여분 뒤 해경의 구조 활동이 시작됐고, 구조대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피고인들은 구조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을 수 있다.

이 선장 등이 뒤늦게나마 승객들을 퇴선시키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도 인정됐다. 이 선장은 법정에서 “어떻게 산 사람을 다 죽이려고… 한두 사람도 아닌데 그런 마음을 먹겠습니까”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기관장 박씨의 경우 살인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박씨는 사고 당시 바로 옆자리에 굴러 떨어져 부상당한 조리부 승무원 2명을 그대로 둔 채 구조됐다. 구조된 이후에도 해경에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명백했던 셈이다.

◇구조의무 팽개쳐 유기치사…최고형량 선고=재판부는 승객 구조 활동을 하지 않고 탈출한 승무원들의 무책임함을 지적했다. 이들은 즉각적인 퇴선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해경이 구조할 것이란 안일한 생각과 두려움 때문에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기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법원은 참사의 책임을 피고인들의 형량에 반영했다. 이 선장에 대해서는 유기치사상 혐의 등을 적용해 처단 가능형 중 최고형인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박씨와 항해사 강모(42)씨, 김모(46)씨에게도 각각 징역 15∼30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마무리되면서 남은 세월호 관련 재판은 총 6건이다. 대상은 김한식 대표를 포함한 청해진해운 임직원 등 11명, 관제업무를 부실하게 한 진도VTS 소속 해경 13명, 현장 구호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목포해경 123정 정장, 구명뗏목 정비업체 관계자 4명 등이다. 김 대표 등 임직원들은 20일 광주지법에서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