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냉전체제 상징 베를린 장벽은 붕괴됐지만 러-유럽 대립 격화… 新냉전 위기 고조

입력 2014-11-12 03:36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신(新)냉전 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냉전체제를 상징하던 베를린 장벽은 붕괴됐지만 우크라이나 분리독립 문제와 서방의 러시아 제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 등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서방이 일촉즉발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위기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행사에서 “세계가 새로운 냉전에 들어서기 직전”이라고 경고하면서 다시 부각됐다. 고르바초프는 10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비공개 회담을 가진 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대립을 언급하면서 “또 장벽이 만들어지게 놔둘 수는 없으며 균열을 치유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 간의 대치 상황은 냉전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빈번했다. 최근의 위기 상황들은 동유럽에 대한 나토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러시아의 조바심을 보여줬다.

지난 9월 발트해 연안국인 에스토니아의 보안국 요원 에스톤 코베르가 에스토니아 국경에서 러시아 요원에게 납치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사건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에스토니아를 방문해 발트 3국의 방위 보장을 약속한 직후 발생해 러시아의 불만 표출로 해석됐었다. 3월에는 위치 신호를 보내지 않은 채 비행하던 러시아 정찰기가 승객 132명을 태우고 로마로 향하던 스칸디나비아항공(SAS) 여객기와 덴마크 상공에서 충돌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러시아 전투기가 지난 6월 덴마크의 본홀름섬에서 공격 훈련을 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지난달 17∼24일에는 러시아 잠수함이 스웨덴 영해를 침범한 것으로 파악돼 대대적인 색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신냉전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럽 싱크탱크인 유러피안리더십네트워크(ELN)는 ‘위험한 벼랑 끝 상황’ 보고서를 통해 “지난 8개월간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의 위험한 대치 상황이 40차례 벌어졌다”면서 “안보 위협에 대한 위기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역시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냉전 직전의 이 상황을 무시한다면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맞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0일 런던 금융특구 수장인 로드메이어 주최 만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노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압력의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냉전의 위기 속에서 과거 ‘냉전시대 동맹’이던 러시아와 중국이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것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는 거슬리는 일이다. 요즘 ‘신(新)밀월기’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두 나라가 군사적 동맹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