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밥’이 되기 위해 오신 예수처럼 가난으로 쓰러진 이웃의 밥이 되겠습니다”

입력 2014-11-12 02:25
다일공동체 창립 26주년을 기념해 11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운동본부에서 열린 ‘다시 한 번 일어서기, 다일의 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생명의 쌀 이어가기 운동’의 시작을 알리며 대형 항아리에 기부 받은 쌀을 붓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11일 아침 서울 신당동의 한 다세대 주택가. 김청진(86) 할아버지는 옷매무새를 평소보다 더욱 단정히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가족이 없는 그에게 매일 식사를 대접하고, 말벗이 되어 준 친구의 생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걷고, 지하철을 타고, 또 걸어 40여분 만에 도착한 그곳은 이미 축하객들로 붐볐다. 김 할아버지는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축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좋다”며 인파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 시립대로 다일공동체(대표 최일도 목사) 밥퍼운동본부에서는 다일공동체 창립 26주년을 기념해 ‘다일의 날, 다시 한 번 일어서기’ 행사가 열렸다. 본부 앞 공터에 마련된 의자 1000여석은 시작 전부터 가득 찼다. 매일 이곳에서 밥을 먹던 독거노인과 노숙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고령자인 민용식(103) 할아버지와 윤태성(96) 할아버지는 맨 앞줄에 앉아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했다. 다일공동체를 찾은 지 올해로 10년째인 윤 할아버지는 “이곳에 오면 친절하게 밥을 대접해 주는 봉사자들 덕에 배도 부르고, 마음도 따뜻해진다”며 “얻어먹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박모(45)씨는 “이곳이 없었으면 난 벌써 길거리에서 죽었을 것”이라며 “매일 밥만 먹고 가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고마움에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기념메시지를 전한 최일도 목사는 “1988년 오늘, 청량리역에서 쓰러져 있던 노인에게 처음 라면을 대접하며 출발한 다일공동체는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한다’는 정신으로 설립됐다”며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곳으로 모여든 많은 실직자와 노숙인들이 ‘다일’이라는 단어에 ‘다시 한번 일어서기’라는 뜻을 부여했고, 그 뒤로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일공동체는 지난 26년 동안 매일 평균 1000여명에게 식사를 제공해 왔다. 얼마 전 무료로 제공한 식사가 700만 그릇을 넘었다. 최 목사는 “우리의 ‘밥’이 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국내외에서 가난과 궁핍에 지쳐 쓰러진 이웃의 밥이 돼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혁신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 등 정계 인사도 다수 참석했다. 김 대표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는 것이 이치임에도 우리 사회에 사각지대가 많아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다일공동체의 사역은 참 바람직하며, 이 사역이 북한 동포들에게까지 확산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일공동체는 이날 ‘생명의 쌀 이어가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쌀 기부를 독려하고, 기부 받은 쌀을 다일공동체 7개 해외분원(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탄자니아 우간다)에 전달해 빈민구제사역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참석자들은 행사장에 마련된 대형 항아리에 첫 쌀을 넣으며 이 운동의 출발을 알렸다. 참석자들은 다일공동체가 준비한 비빔밥을 나눈 뒤 행사를 마쳤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