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 무덤 위에 선 교회가 셋이 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야고보 성당, 그리고 인도 첸나이의 도마 기념교회가 그것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르네상스 건축의 최대 걸작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야고보 성당은 ‘성 야고보의 길’이라는 500마일에 걸친 순례의 종착점이 되었다.
도마 기념교회는 첸나이의 마리나 비치 옆에 1504년에 포르투갈이 건립한 것을 1893년에 재건축하였다. 도마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도착해서 선교를 하다가 첸나이에서 순교한 것을 기념하는 교회다. 도마는 힌두교 상위 카스트를 개종시켜서 7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도마의 선교 탓인지 지금도 인도에는 기독교 인구가 적지 않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뒤를 이어서 기독교가 세 번째로 큰 종교이다. 기독교인의 수가 약 2400만명을 상회하여 인도 인구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지만, 특히 남인도와 북동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 인도교회는 학교와 병원 등을 운영하며 인도 발전에 기여해왔다.
인도교회 중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는 남인도교회(CSI)이다. 남인도교회는 남인도의 5개 주와 1개 준주 지역에 걸쳐서 1만5000개 교회에 400만명의 교인을 갖고 있다. 남인도교회는 22개 교구마다 주교를 갖고 있으나, 목사의 수가 3500명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중에 5.5%가 여성이며, 최근 첫 번째 여성 주교를 배출했다. 선교사 2700명을 인도 전역으로 파송해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체계적인 신학 훈련을 받은 선교사라기보다 과거 우리나라의 매서인(賣書人)에 가까운 이들이다. 낙후된 지역을 찾아가서 함께 거주하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선교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인도교회는 선교적 열정이 대단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남인도교회는 1947년 남인디아연합교회, 남인도의 성공회 교구, 감리교회의 연합으로 창립됐다. 남인디아연합교회는 1908년 장로교회와 회중교회가 통합해 설립했으니 교회연합을 향한 역사가 벌써 한 세기를 넘고 있다.
물론 남인도교회는 근대 개신교 선교의 열매다. 1706년에 덴마크 국왕의 요청으로 독일 할레대학의 경건주의자들이 인도의 타밀지방에 상륙했다. 바돌로뮤 지켄발크와 헨리 플뤼챠우는 현지인이나 덴마크인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최초의 인도 성경인 타밀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1793년에는 영어권 첫 선교사인 윌리암 캐리가 침례교선교협회의 파송으로 인도에 도착했다. 그는 30년 동안 신구약성경을 6개 언어로, 신약성경을 23개의 언어로 번역해서 인도선교의 초석을 놓았다.
남인도교회는 도마의 선교역사에 대해서 높은 긍지를 지니고 있다. 1908년 남인디아연합교회의 탄생이나, 47년 남인도교회의 창립도 이러한 배경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남인도교회의 창립을 “20세기 전반에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위대한 기적 사건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인도교회는 성공회의 감독제 교회의 전통을 이어서 비성공회 교회들도 주교제를 받아들였다. 장로교회나 회중교회의 전통을 인정해서 각 교회가 자신의 예배와 예전을 지켜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남인도교회는 레슬리 뉴비긴을 비롯한 뛰어난 신학자도 다수 배출했다. 남인도교회는 인도와 파키스탄, 스리랑카 일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남인도교회는 끝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한 ‘의심 많은 도마’의 후예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년 8월에는 남인도교회를 비롯한 인도의 주요 교단과 한국의 몇 교단이 한·인선교협의회를 창립하게 된다. 인도에는 600여명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헌신하고 있다. 한·인선교협의회의 창립으로 현지 교회를 존중하는 협력 선교가 이루어져 시너지 효과를 얻기를 기대한다.
변창배 목사 (예장 통합 총회기획국장)
[시온의 소리-변창배]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입력 2014-11-12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