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19)군의 시선은 인터뷰 내내 땅을 향했다. 부모 없이 어린 동생들을 힘겹게 키우고 있어서일까. 대부분 아프리카 청소년들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밝게 웃지만 그에게선 그런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임마누엘이 사는 곳은 르완다 서부 우무초 지역 디토브 마을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기자가 방문한 디토브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거주하는데 임마누엘의 집이 가장 낡았다. 임마누엘과 어린 동생 2명은 약 3.3㎡(한 평) 공간에서 산다. 벽은 녹슨 철판을 대충 붙여놨기 때문에 숭숭 구멍이 뚫려 있다. 나뭇가지를 엉성하게 엮어 기둥을 삼았는데 거미줄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해진 비료포대가 담요 역할을 한다. 이불은 짙은 고동색인데 언제 빨았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찌그러진 솥에 콩을 삶고 있었는데 매캐한 연기가 집안에 자욱했다. 그곳에 가난과 절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4남매에게 고난이 닥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르완다 대학살 때 이웃 주민을 살해한 임마누엘의 부친은 1994년부터 12년간 감옥을 들락거렸다. 르완다 대학살은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후투족 강경파가 94년 4월부터 100여일간 인구의 14%인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 등 80만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대학살은 그해 7월 투치족이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면서 종료됐다. 이때 내전이 끝나고 종족 간 화해가 이뤄져 정국이 안정됐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에 모든 앙금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임마누엘의 아버지는 이웃을 살해한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주변 사람들의 보복이 무서워서인지 임마누엘 어머니는 남편이 석방되기 전 2005년 집을 나갔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감옥에서 석방된 이후 알코올 중독에 빠져 매일 술만 마셨어요. 집에 돈을 주지 않아 무척 힘들었어요. 그런 아빠도 얼마 있다가 집을 나갔어요.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임마누엘은 아빠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그는 “아빠가 정식 출소하기 전 사회적응을 위해 간간이 집에 들렀는데 그때마다 엄마와 싸움을 했다”면서 “살인자의 아내라는 시선 때문인지 엄마도 결국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임마누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자퇴했다. 사실상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책임지려니 방법이 없었다. 도로공사 현장으로 나가 잡부로 일했다. 1개월 내내 일해 봐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40달러. 그 돈으로 콩과 감자를 조금씩 사서 끓여 먹는다. 그게 전부다.
삶이 힘들다 보니 둘째 시보마나 아타나스(10)군은 수도 키갈리로 갔다. 말썽꾸러기인 동생을 거둬 준 것은 키갈리로 이사를 간 동네 주민이다. 1주일에 두 번 정도 연락은 하지만 남은 두 동생을 챙겨야 하니 신경 쓸 여력도 없다. 책임져야 할 동생을 한 명이라도 덜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동생들과 어렵게 살고 있지만 아빠를 미워하지는 않는다”면서 “엄마가 한 달에 7달러를 보내준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연락을 하고 있다”고 나직하게 말했다.
임마누엘의 과묵한 성격을 닮은 듯 셋째 동생 니오모가보 티오네스트(8)군과 막내 니란자와히 바히마나 이본(6)양도 조용했다. 다행히 월드비전의 지원으로 막내는 학용품 지원을 받고 있다. 학용품은 임마누엘의 처지에서 엄두조차 못내는 것들이다.
디시타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이본은 “나중에 간호사가 되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본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인 티오네스트의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생처럼 월드비전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티오네스트는 “나도 이본처럼 학용품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결연아동은 월드비전과 마을 주민들이 협의해 결정하는데 지역에서 도와줘야 할 아동들이 워낙 많다보니 이본만 선정됐다고 한다.
월드비전은 임마누엘 가정을 돕기 위해 올해 초 염소 두 마리를 지원했으며, 지역 공동체에 융화될 수 있도록 ‘평화세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임마누엘 가정 역시 대학살의 피해자이며 한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교육시킨다.
그는 당장 생필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찌그러진 솥 대신 냄비 2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잘 수 있는 깨끗한 침낭과 물통도요. 그리고 이건 소원인데… 티오네스트가 월드비전 결연아동이 됐으면 좋겠어요.”
“동생들을 돌보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마누엘은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어려워요. 가장 걱정되는 건 1년에 5달러씩 내는 건강보험료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만약 동생들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우리 형편에 정말 대책이 없어요.”
그의 꿈은 가난으로부터 자립하는 것이다. 임마누엘은 “기회가 된다면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다. 돈을 벌어 동생들을 잘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꿈 이야기를 할 때 유일하게 임마누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우무초(르완다)=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밀알의 기적] (④·끝) 르완다 - 대학살 이후 가장 역할 19세 임마누엘군
입력 2014-11-13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