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키 162㎝ 벽’

입력 2014-11-12 02:10

여성 승무원이 여객기에 처음 탑승한 것은 1930년이다. 주인공은 미국 아이오와주 출신의 20대 간호사 엘렌 처치(25)다. 간호학교를 졸업한 그는 비행에 흥미를 느껴 조종사 취업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입사지원서를 낼 때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비행기를 타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찼던 그는 “간호사가 탑승하면 승객들의 비행공포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제안에 솔깃한 항공사는 유나이티드항공의 전신인 보잉에어트랜스포트(BAT)였다. 1개월 조건부로 BAT에 고용된 엘렌은 마침내 그해 5월 15일 샌프란시스코∼샤이엔 노선에 투입되면서 사상 첫 여성 승무원이라는 명예를 얻게 됐다.

여성 승무원들은 ‘에어 호스티스(Air Hostess)’ ‘에어 걸(Air Girl)’이라고 불리다가 선박에서 선실 서비스를 담당하던 남성 ‘스튜어드’에 빗대 ‘스튜어디스(Stewardess)로 명칭이 바뀌게 됐다. 당시에는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키 162㎝ 이하, 몸무게 51㎏ 이하, 나이 20∼26세 이하의 미혼여성’이라는 조건이 붙여졌다. 항공기 내부가 좁고 천장이 낮아 아담한 체구를 선호한 것이다. 요즘은 신장 제한이 없는 곳이 많고, 유나이티드항공의 최소기준은 5피트(152.4㎝)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외국보다 키 기준이 높다. 대한항공, 진에어,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5개 항공사는 남녀 지원 자격으로 ‘신장 162㎝ 이상’을 명시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2008년부터 지원자격에서 신장 기준을 없앴다. 하지만 ‘키 162㎝ 벽’이 너무 높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평균 키는 160.9㎝다. 평균 여성들은 승무원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신장뿐 아니라 외모도 중요한 채용 조건 중 하나다. 우리나라 여승무원의 미모는 세계 항공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을 정도다. 승무원은 단순 도우미가 아니라 전문직에 속한다. 투철한 책임감과 봉사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내 항공사의 외모중시 풍조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