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상인의 상가권리금 보호 방안을 담은 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돼 심의 절차에 들어간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7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고, 11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별도의 개정안을 낸다. 법무부 안(9월 발표)을 토대로 만들어진 김 의원 법안과 이를 보완한 내용의 서 의원 법안은 건물주와 임차상인의 ‘권리’를 다음과 같이 바꿔놓았다.
◇모든 점포에서 최소 5년은 쫓겨나지 않고 장사할 수 있다=유모(47)씨는 2012년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 고깃집을 냈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00만원을 내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건물주가 바뀌자 한 달 만에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권리금 1억9000만원과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릴 판이다. 현행법은 이 정도 규모의 점포에 계약 갱신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새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하면 그냥 나오는 수밖에 없다.
유씨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김 의원 법안은 건물주가 바뀌든, 점포 규모가 어떻든 5년간은 계약기간을 보장토록 했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모든 임차상인이 최소 5년간은 계속 장사할 권리를 갖게 된다. 서 의원 안은 이를 10년으로 늘렸다.
◇건물주, 임차상인이 권리금 받도록 협력해야=서울 종로구청 인근에 1995년 문을 연 중국집 ‘신신원’. 신금수(53)씨 부부의 노력으로 ‘맛집’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건물주는 2012년 10월 보증금을 65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월세는 320만원에서 65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신씨는 권리금이라도 건지려고 점포 인수자를 물색했지만 허사였다. 건물주가 주변 시세보다 훨씬 높은 월세를 요구해 들어오려는 상인이 없었다.
건물주가 이처럼 임차상인 간 점포 양도·양수 거래에 개입해 권리금을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협력의무’가 부과된다. 특히 기존 상인이 점포를 양도할 때 이를 막으려 일부러 높은 월세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협력의무를 위반하면 임차상인은 권리금 범위 안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내 점포 내가 쓴다?=최모(55)씨는 2011년 3월 서울 홍대 앞에 곱창집을 열었다. 계약기간은 2년. 권리금 2억원, 인테리어비 1억7000만원이 들었다. 장사가 잘됐지만 2012년 11월 건물주가 바뀌면서 사달이 났다. 새 건물주는 “내가 점포를 쓰겠다”며 최씨를 내보내려 했다.
김 의원 법안이 통과되면 이렇게 건물주가 바뀌어도 5년 계약갱신권이 부여돼 최씨는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건물주가 권리금을 받는 걸 방해하면 ‘협력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건물주가 1년 동안 직접 거주하는 등 영리목적으로 점포를 쓰지 않는다면 협력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건물주 입장에선 1년 임대료와 권리금을 비교해 권리금이 더 크다면 임차상인을 내몰 가능성이 크다.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은 여전한 사각지대=엄홍섭(59)씨는 2011년 서울 서초동에 커피숍을 열었다. 퇴직금에 대출을 보태 2억8000만원이 들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단골이 많았다. 그러나 건물주는 지난해 7월 재건축 통보를 한 뒤 나가라고 했다. 권리금 1억6000만원은 허공으로 사라지게 됐다.
권리금을 떼이는 대표적인 경우가 이 같은 건물주의 재개발·재건축인데, 김 의원 안에는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건물주의 소유권 행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은 “임차상인 피해 중 60%는 재건축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해법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서 의원 안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려면 임차상인에게 퇴거보상비를 지급토록 했다.
◇‘임대료 폭탄’에 무방비=서울 광화문에 2008년 중국집을 낸 김경배(60)씨. 권리금만 2억6000만원을 주고 점포를 인수했다. 2011년 건물주가 바뀌면서 보증금이 4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월세는 650만원에서 1550만원으로 뛰었다. 환산보증금 4억원이 넘는 점포여서 월세 9% 상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 거액의 권리금 때문에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줬지만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김 의원 안은 이 같은 환산보증금과 임대료 인상 폭 규정을 현행대로 유지했다. 건물주가 임차상인을 쫓아낼 임대료를 마구 올려도 김경배씨 경우처럼 대응할 방법이 없다. 법무법인 도담의 김영주 변호사는 “임대료 폭탄을 그냥 놔둔다면 5년 계약 갱신권이나 협력의무도 무력화될 수 있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경 박세환 기자 yido@kmib.co.kr
건물주 바뀌어도 권리금 보장… “재건축 때도 보호를”
입력 2014-11-1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