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아베에게 “양국관계 악화 시비곡직 명확” 일침

입력 2014-11-11 03:51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0∼11일 진행되면서 참가국 정상들 간의 양자 회담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관심이 모아진 중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은 일단 성사는 됐지만 회담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중·일 정상 첫 만남은 가졌지만=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10일 만남은 정상회담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회담이라는 것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는 국기도 없이 소파에 앉아서 배석자 몇 명만 두고 진행된 것으로 안다”면서 “당초 일본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상회담 시에 사용되는 동시통역 대신 순차통역이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30분간의 만남 이후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중국 외교부 발표문을 인용해 “시 주석이 APEC 정상들의 비정식 회의에 참석한 아베 총리와 (일본 측의)요청에 따라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둘의 만남을 담은 화면과 사진 속에서도 냉랭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회담에 앞서 취재진 앞에서 악수할 때 시 주석은 굳은 표정을 한 채 말을 붙이려는 아베 총리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중·일은 서로 이웃국가로서 양국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한 발전은 양국 인민의 근본이익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대에도 부합한다”면서도 “최근 2년간 중·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시비곡직’(是非曲直·누구의 잘못인지)은 명확하다”고 밝혔다. 양국 관계 악화 원인을 일본 측이 제공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어 지난 7일 양국이 역사 인식,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영토 문제 등과 관련해 합의한 내용을 상기시키며 “일본이 이 합의사항의 정신에 입각, 관련 문제를 잘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 평화 발전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결심이 돼 있다”면서 “현 정부는 역대 일본 정부가 역사문제에 관해 밝힌 인식을 지속적으로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기자들에게 “(동중국해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해상 연락 메커니즘을 가동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성과를 강조했다.

◇밀월 확인 중·러, 갈등 해소 일·러=시 주석은 전날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에너지 분야 협력 등을 포함한 17건의 협력문서에 서명하며 밀월 관계를 거듭 확인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은 지난해 3월 시 주석의 국가주석 취임 이후 10번째다.

정상회담 후 시 주석은 “국제 정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기존 (협력) 노선을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다면적 협력을 확대하고 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도 “세계를 국제법의 틀 내에 머물도록 하고 좀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이 아주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국은 러시아 국영가스업체 가스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간 가스공급과 관련한 포괄적 협정과 ‘서부 노선’을 이용한 가스공급 사업과 관련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삐걱거리던 양국 관계를 정상화시켰다. 교도통신은 “양국이 내년 적절한 시기에 푸틴 대통령의 방일을 준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러시아 소치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했을 때 푸틴 대통령의 올가을 일본 방문을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대러 제재를 시작하면서 구체적인 방일 일정을 위한 조율이 진척되지 않았다.

양국 정상은 이 밖에 북방영토 문제를 포함한 러·일 평화조약체결 협상에 대해 양측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친러파의 독자적인 선거를 언급하며 ‘사태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고 우려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일 오전 베이징에 도착해 공식 일정을 시작했으며 12일에는 시 주석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