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 경기도 수원 팔달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는 한밤중에 소음을 일으킨 젊은 여성과 이웃 중년 남성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김모(23·여)씨는 친구 집에 놀러와 술을 마시고 한바탕 떠들썩하게 놀던 중이었다. 이웃 박모(55)씨가 찾아가 따졌지만 술에 취한 김씨는 적반하장이었다. 되레 대들며 욕을 했다. 자식 같은 사람에게 욕설을 들은 박씨는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김씨 머리를 한 차례 툭 치고 격앙된 어조로 훈계를 쏟아냈다. 김씨는 잠시 후 경찰관이 등장하자 박씨에게 폭행당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
원래는 꽃으로 사람을 때려도 폭행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경찰은 박씨 행동을 처벌받지 않는 정당행위로 판단했다. 정당행위는 정당방위와 달리 자기 방어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법이나 업무, 기타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 행동은 폭행이라기보다 훈계”라며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행위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지난 4월 정당행위와 정당방위 판단 요건 등을 명시한 ‘폭력사건 수사지침’을 일선에 하달했다. 이후 이달 초까지 이 지침 덕에 정당행위·방위를 인정받아 처벌을 피한 사람은 841명에 이른다.
지난 9월 말 새벽 인천 남구 한 편의점 앞에서는 이모(36)씨가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7명을 훈계하다 말대꾸하는 학생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이 행동도 정당행위로 인정됐다. 청소년 탈선을 바로잡기 위해 꾸짖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무력을 쓴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월 말 세종시에서는 말다툼 끝에 얼굴과 뒤통수를 맞은 남성이 도망치려는 상대의 허리를 잡은 행동이 정당행위로 인정받았다. 상대는 쌍방 폭행으로 몰아가려 했지만 경찰은 폭행의 고의성이 없다고 봤다. 상대는 현행범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정당방위 판단 요건은 기존 8개 항목 가운데 상해 진단기간 부분을 고쳐 시행 중이다. 이전에는 방어를 위한 행동이라도 상대에게 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히면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었다. 지난 4월부터는 ‘장기간 상당한 치료를 요하는 상해’로 요건을 완화했다.
지난 8월 중순 새벽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 사는 최모씨는 집 밖 화단에서 아내와 딸의 방을 훔쳐보는 박모씨를 붙잡는 과정에서 전치 3주가량의 상해를 입혔다. 박씨는 “대변을 보려다가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박씨가 전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방안을 훔쳐봤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있었다.
또 경찰은 피해자가 진단서를 제출하더라도 실제 상처 정도 등을 따져 상해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진단서에 ‘상해’라는 표현이 있다고 다 상해로 보진 않는다는 얘기다. 상해는 폭행보다 죄가 무겁다. 8월 중순 울산 울주군에서는 모텔 주인이 가게 출입문 앞에 주차된 차를 발로 찼다. 차주는 그의 얼굴을 때려 전치 2주 상해 진단서가 나왔지만 상해죄 대신 폭행죄가 적용됐다. 진단서상 병명이 단순 타박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폭력사건 정당방위?정당행위 등 적용사례
■정당방위
【 사건 개요 】
'14. 8. 13. 01:05경 인천 남동구 소재 ○○빌라 앞에서 박○○이 최○○의 주거지 화단에 들어와 창문으로 아내와 딸의 방을 훔쳐보자, 최○○이 이를 붙잡는 과정에서 반항하며 도주하려는 박○○를 밀치고 주먹으로 때려 약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하며 체포한 사안
【 정당방위 판단 사유 】
박○○는 대변이 마려워 들어와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나 부당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전날에도 화단에서 방안을 훔쳐봤다는 목격자 확보) 및 행위 당시의 긴박성 등 특수성 감안, 정당방위 인정 (인천·남동)
【 사건 개요 】
'14. 9. 10. 22:20경 한○○은 대구 서구 소재 안○○의 주거지에 술에 취해 찾아와 아무런 이유없이 "○○○ 같은 ○○" 라고 욕설을 지속적으로 하며 안○○의 눈과 얼굴을 때리고, 이에 안○○는 부당한 침해에 벗어나기 위해서 손을 잡고 손가락을 깨물면서 폭행을 제지한 사안
【 정당방위 판단 사유 】
한○○이 먼저 도발한 점, 안○○에 비해 피의자의 피해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 안○○이 눈을 맞아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한○○이 폭행하려고 한 점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가 피의자의 손가락을 깨문 행위는 사회통념상 방어에 필요한 한도 내의 행위로 판단, 정당방위 인정 (대구·서부)
【 사건 개요 】
'14. 7. 27. 05:20경 인천 부평구 소재 ○○나이트 앞 노상에서 곽○○이 타인에게 시비를 걸다가 이를 신고하려한 자신의 일행의 얼굴을 때리고 계속하여 따라다니며 폭행하려 하자, 박○○이 이를 제지하기 위해 뒤쪽에서 곽○○의 목부위를 잡아 넘어뜨린 사안
【 정당방위 판단 사유 】
CCTV 확인 결과, 곽○○이 먼저 폭행하고 계속 따라다녔으며, 이를 피하다가 일행이 대항하여 피의자를 넘어뜨리는 장면 확인, 사회통념상 방어에 필요한 한도 내의 행위로 판단, 정당방위 인정(인천·삼산)
【 사건 개요 】
'14. 9. 3. 21:50경 충북 진천군 소재 노상에서 부딪힌 일로 김○○이 학생인 김△△(17세)의 얼굴을 팔꿈치로 때리고 얼굴을 20여회 때려 뇌진탕 등의 상해를 가하고, 이에 대항하여 김△△는 주먹으로 김○○의 얼굴을 1~2회 때리고 발로 배를 1회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한 사안
【 정당방위 판단 사유 】
목격자 진술·CCTV 분석한 바 김△△의 진술과 일치하고, 대상자의 행위가 피해자의 폭력 및 도발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행위인 점, 폭력 행위 정도가 침해 행위의 수준보다 중하지 않은 점 등 감안, 정당방위 인정(충북·진천)
■정당행위
【 사건 개요 】
'14. 8. 15. 22:30경 수원시 팔달구 소재 다세대주택에서 이웃집에 놀러온 김○○(여, 23세)이 야간에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자, 박○○이 찾아가 훈계하는 과정에서 모자로 머리를 1대 때려 폭행한 사안
【 정당행위 판단 사유 】
나이어린 여자애들이 어른에게 욕을 하여 모자로 머리를 툭툭 치면서 훈계한 것으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당행위로 판단 (경기·수원중부)
【 사건 개요 】
'14. 8. 28. 23:05경 세종시 소재 노상에서 김○○이 이웃 주민인 김△△와 말다툼 중 주먹으로 대상자의 얼굴 2회, 뒤통수를 1회 때려 폭행하여, 김△△가 경찰에 신고를 하자 현장을 이탈하려 함으로 김○○ 허리를 잡고 도망하지 못하게 한 사안
【 정당행위 판단 사유 】
김○○에 대한 유형력 행사이긴 하지만 김○○의 행위가 현행범에 해당될 수 있고 법익 침해에 대응한 행위로서 폭행의 고의성 등 불인정, 불입건(충남·세종)
【 사건 개요 】
'14. 9. 21. 00:15경 인천 남구 소재 ○○편의점 앞 노상에서 고등학생인 김○○이 7명 가량과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어 이○○(36세)이 훈계를 하였는데, 김○○이 말대꾸 한다는 이유로 어깨를 잡는 등 폭행한 사안
【 정당행위 판단 사유 】
이○○의 행위는 청소년 탈선행위에 대한 교육?훈계 차원에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정당행위 인정 (인천·남부)
■상해여부 판단
【 사건 개요 】
'14. 8. 13. 12:08경 울산 울주군 소재 모텔 앞 노상에서 가게 출입문을 막고 주차된 차량을 발로 찬 것에 시비되어 말다툼 중 박○○이 김○○의 목 부위를 2-3회 밀쳐 14일간의 상해진단서를 발부받아 제출한 사안
【 상해 불인정 사유 】
손으로 피해자를 1회 때린 것으로 진단서의 병명이 일상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타박상 등에 불과한 점 등 종합하여 상해 불인정, 폭행죄 적용 (울산·울주)
【 사건 개요 】
'14. 9. 6. 18:20경 광주시 오포읍 소재 ○○빌라 주차장에서 문○○과 김○○이 주차문제로 시비되어 서로 머리를 잡아 흔들어 넘어뜨리는 등 폭행하여 각 13일, 10일의 진단서를 제출한 사안
【 상해 불인정 사유 】
목격자는 상호 폭행한 사실이 있으나 경미했다고 진술하고, 폭행으로 인한 상처가 극히 경미하여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 폭행죄 의율 (경기·광주)
어른에 욕한 20대 여성 머리를 모자로 툭 치고 훈계했다면… 정당행위일까 아닐까
입력 2014-11-11 03:05 수정 2014-11-11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