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tvN 드라마 ‘미생’은 종합상사를 배경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 ‘상사맨’들은 “우리는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슈퍼맨 모두를 팔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장그래(임시완)와 오상식 과장(이성민)이 일하는 종합상사는 어떤 곳이고 실제 상사맨의 생활은 어떨까.
효성물산(무역PG의 전신) 출신 김민경(32) 대리를 통해 실제 종합상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국어를 전공한 김 대리는 2006년 효성물산에 입사해 6년 동안 철강 영업을 했다.
◇에피소드 만들어야 하는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드라마 주인공들이 속한 영업3팀은 휴대전화, 극세사 먼지떨이 등 여러 아이템을 취급한다. 이는 드라마라서 가능한 일이다. 매회 에피소드를 만들어야 하니 판매 아이템이 다양해진다. 현실에서는 한 팀에서 한 가지 아이템으로 승부를 본다. 철강 영업만 하더라도 열연과 냉연 파트로 나뉘어 전문 분야를 키운다.
상사맨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극 중 한석율(변요한)처럼 임기응변에 강하고, 술과 대화를 좋아하는 게 첫 번째다. 반면 주인공 장그래처럼 수줍음을 타며 말수가 적고 묵묵히 일만 하지만 성과가 좋은 스타일도 있다. 물론 오 과장처럼 상사와의 마찰로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됐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인물도 있다.
종합상사는 정말 여직원을 불편해할까. 드라마에서는 능력이 탁월한 신입사원 안영이(강소라)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홀대받는다. 실제 상사에서도 여직원의 비율은 작은 편이다. 김 대리도 철강 영업팀 직원으로는 두 번째 여직원이었다. 그는 “여직원이 적으니 남녀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직원의 업무 비중은 크다. “종합상사에서는 서류 자체가 돈이다. 서류 작업을 하는 실무직 여성은 보통 10년 이상 경력을 갖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영업팀 위주로 보이지만 실제 상사 업무에서는 서류 작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바이어 접대로 고단한 영업3팀. 드라마에선 술집 마담이 접대를 돕겠다고 회사까지 찾아오지만 이는 과장이다. 요즘은 회식·접대문화가 바뀌어 1차에서 대부분 끝난다.
◇종합상사, 1980년대 최고 직장에서 지금은 ‘乙’로=종합상사는 대규모 자본력을 가진 무역업자를 말한다. 효성은 7대 종합상사(효성·대우인터내셔널·삼성물산·SK네트웍스·GS글로벌·LG상사·현대종합상사) 중 하나다. 1975년 연간 수출실적 5000만 달러 이상인 7개 기업을 이렇게 불렀다.
1970년대 수출이 증가하면서 종합상사는 소속 그룹의 수출창구 역할을 맡았다. 각 계열사의 영업·판매 관련 지수 등 모든 숫자를 종합상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기에 사실상의 지주회사로서 지위를 누렸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80년대, 정장 차림에 007가방 하나만 메고 전 세계를 누비는 수출역군의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라면에서 미사일까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상사 직원은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업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97년 IMF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종합상사는 해외 영업망을 갖춘 제조업체들의 해외 직수출이 늘면서 예전의 위상을 잃게 됐다. 김 대리는 “요즘 상사맨들 사이에서는 ‘물산’이 아니라 ‘을(乙)산’,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을(乙)터내셔널’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오간다”고 털어놨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가전·먼지떨이 등 다 파는 장그래… 실제 상사맨은 한 아이템 승부
입력 2014-11-11 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