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는 유모차를 볼 수 없습니다. 대신 아기들은 엄마와 누이의 등에 업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19세 말 개항기, 이 땅에 살았던 6세 서양 소녀 트레이시 매(Tracy Mae)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다. 부모는 아이의 호기심 어린 눈에 비친 조선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고 설명을 붙여 책으로 엮었다. 연을 날리거나 썰매를 지치는 또래 모습과 주일학교, 유치원 등 서양 문화가 갓 이식된 풍경도 담겼다. 그렇게 찍은 60여장의 유리건판 사진이 처음 공개됐다.
서울 중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관 6주년 기념 기획전 ‘아펜젤러의 친구들: 100여년 전 서양인들의 서울생활’에서다. 개항기 서양인들의 눈으로 본 조선을 새롭게 해석해 보여주고자 기획된 전시다. 주로 선교사들이 호흡한 대한제국의 역동적 모습이 정동 일대를 중심으로 소개된다.
최초의 서양식 중등교육기관 배재학당 설립자인 선교사 H G 아펜젤러(1858∼1902)가 1890년부터 1900년까지의 조선을 카메라에 담은 ‘아펜젤러 앨범’은 처음으로 전체가 선보였다. 경운궁 주변의 영국 공사관과 총해관(관세청), 중명전 주변의 미국 공사관 등의 사진에선 개항기 열강의 각축이 읽힌다.
선교사이자 한글을 사랑했던 언어학자 호머 헐버트(1863∼1949)가 ‘별주부전’ 등 전래동화를 재해석해 쓴 동화집 ‘엄지 마법사(Omjee the Wizard)’, 선교사 제임스 게일(1863∼1937)이 영문으로 번역한 ‘구운몽’도 볼 수 있다. 헐버트가 지은 배재학당의 한글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 총해관의 영국인 총세무사 존 맥리비 브라운의 유품도 눈길을 끈다.
김종헌(사진) 관장은 10일 “개항기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은 우리에게서 긍정적인 가능성과 꿈틀거리는 힘을 봤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합병되면서 그런 동력이 식었다”면서 “서양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근대를 새롭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1916년 건축 당시의 원형이 보존됐던 배재학당 동관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2008년 개관했다. 전시는 내년 5월 31일까지다(02-319-5578).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이 나라는 유모차도 없고 엄마의 등에 업혀… ”
입력 2014-11-11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