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을 제대로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회계 전문가가 감독 부서에 감사 기법에 대한 컨설팅을 해준다면 비리가 발생할 개연성이 큰 폭으로 줄어들지요. 구조물 분야에 이런 부정이 횡행하는 건 해당 감사부서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도 큽니다.”
최근 고속도로 터널공사 현장에서 ‘록볼트(Rock Bolt) 빼먹기’라는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비리를 적발해 낸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 하홍순(52·사진) 조사관은 10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큰 성과를 이뤘다는 자부심보다는 국민안전과 직결되는 비리를 저지른 건설업자 등의 행태에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 조사관은 수십년간 주요 자재를 빼돌렸는데도 적발이 안 된 가장 큰 이유는 감독직에 있는 토목전문가가 회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감사권한과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나서서 컨설팅과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주요 자재 수불부 장부에 록볼트, 강관 같은 주요 자재의 잔고가 제로(0)라고 기록돼 있기에 더욱 강한 의심을 갖고 조사를 진행했다”며 “영동∼옥천 구간 공사현장의 경우도 발주처인 한국도로공사에서 회계지식이 있는 감사부서 직원이 나서 거래명세표와 세금계산서 등을 제대로 점검했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감사가 낙하산을 타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상 터널 공사현장에서 암반 속에 록볼트를 넣고 동시에 그 위에 숏크리트를 타설하면 그 구조물 벽면 내부에 들어 있는 록볼트가 설계대로 시공됐는지는 콘크리트를 모두 뜯어내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건설회사가 록볼트를 빼먹는 방식은 철저하고 교묘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가장 흔한 방식은 록볼트 구매단가를 낮추고 그 비율만큼 자재 수량을 뻥튀기해 반입수량을 부풀리고 차액을 빼돌리는 경우다.
또 한 업체가 여러 공구에서 터널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일이 많은데, 이때 세금계산서를 쪼개서 배분하는, 일명 ‘섞어 치기’ 방식을 통해 자재를 빼돌리기도 한다. 이 중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는 사례도 있지만 두 방식을 혼용하는 경우도 많아 단순한 감독·감리만으로는 비리를 들춰 낼 가능성은 낮다.
그는 “컨설팅을 통해 감사기법을 공유하고 시뮬레이션을 거친 뒤 정기적으로 현장조사를 나서야 한다”며 “감리가 없는 시간에는 공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 조사관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하는 터널 공사현장의 ‘자재 빼돌리기’ 부패신고를 받고 조사를 벌였으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추가 조사를 거쳐 지난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글·사진=유명렬 기자 mryoo@kmib.co.kr
“구조물 안전 위협하는 ‘자재 빼돌리기’ 막으려면 현장 감독직원이 회계지식 갖춰야”
입력 2014-11-11 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