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무상복지, 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2014-11-11 02:30

4년 전 무상급식에서 시작해 무상보육으로까지 확대된 무상복지 문제가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했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형편에서 홍준표 경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가 연달아 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이 문제는 앞으로 번질 파급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절박한 현실적인 난제가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무상복지는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재정 상태와 직결된 문제다. 또한 국민의 행복, 삶의 질과 연관된 문제다. 교육과 마찬가지로 복지도 백년 앞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정책과제다. 그러나 정책은 추상적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성에 큰 비중을 둬야 할 문제이기에 정책 형성에서부터 방향, 우선순위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현실 여건들을 합리적인 관점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편적인 무상복지 시행 몇 년 만에 지방정부가 이를 홀로 감당할 수 없는 형편으로 치닫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했을 때도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것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정부의 업적을 과시해 국내 정치 상황을 정권에 유리하도록 이끌어 가려는 계산된 포퓰리즘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가능했다. 실제로 그 후 몇 년이 못 가서 외환위기에 휘말려 IMF 관리체계 하에서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감내해야만 했다.

보편적인 무상복지 실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신중한 논의를 거쳐 마련된 합리적인 정책이라기보다 선거에 임박해 인기영합용으로 급조된 정치공학적 득표 전략의 일환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을 내세운 야권이 재미를 보자 2012년 총선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국공립 보육시설까지 확대해 0∼5세 교육비 지원 등 복지공약 경쟁에 돌입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여야 모두 무상보육, 노인기초연금 등 백화점식 무상복지 공약을 남발해 복지 공약에서 여야 간 차별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복지국가로서의 역사와 체험이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복지 문제가 선거의 이슈가 되자 정치인도 국민도 흥분에 휩싸여 문제의 본질과 실현 가능성의 한계 등을 차분히 짚어 볼 수 있는 이성적 안목을 잃었던 것이다. 모두가 제 닭 잡아먹으면서 당장의 배부름만 구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착시적인 태평성대는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이요,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현실의 밑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토록 한심한 현실에 대해 선거판을 이끌었던 여야 모두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나아가 현실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숙의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장단에 춤을 춘 우리 자신도 책임의 일단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우리네 기존의 생활방식, 우리의 사고를 반성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사회가 그 역사의 희망찬 순간에 보편적 복지와 같은 보다 나은 미래를 기획하려면 사회적 관계를 변경하고,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헌법적 위임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기대되는 이익의 목적합리적인 분배뿐 아니라 기대되는 이익의 상실로 인한 고통의 가치합리적인 분담도 포함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 갈등의 조정 및 해결은 국가가 법을 통해 적절하고 비례성의 원칙에 맞는 평균점을 지향해 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복지 갈등에서 알아야 할 대목은 복지가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는 점이다. 사회정의의 기준은 불우한 사람들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다.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도움이 필요한 약자들을 돕는 것이 복지에서 정의다. 그렇다면 정치판에서 점점 판을 키워 온 보편적 무상복지는 깊이 들여다 볼 때 결코 현실적인 것도 아니고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는 원칙적으로 선별복지가 훨씬 이성적이고 정당한 복지다.

김일수 고려대 법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