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원 (5) “목회학 영역 넓히자” 성균관대서 심리학 공부

입력 2014-11-11 02:24
오지 사역도 하려 했던 나는 서울 중심부 청와대 옆의 체부동성결교회 전도사가 됐다. 나를 많이 사랑해주었던 당시 황경찬 담임목사(오른쪽)와 함께 했다.

체부동성결교회 전도사가 된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신앙의 열정을 사역에 쏟아부었다.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황경찬 담임목사님이 예쁘게 보시고 지원을 많이 해주셨다.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고급 종이에 교회 신문을 발행했고, 교인수첩도 디자인을 멋있게 해 나눠주었다. 교패도 예쁘게 만들어 심방 때마다 직접 망치를 두드려 달아주면 좋아들 했다. 교회 행정서식이나 교적부 등도 새롭게 시도했는데 이런 모습들이 내가 속한 성결교 교단에서 소문이 좋게 난 것 같았다.

이렇게 전도사로 3년이 흘렀다. 하루는 서울신대 조종남 학장님이 나를 보자고 해 만났는데, 학교 조교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셨다. 조 학장님은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막 귀국한 유학파셨다. 당시 학교에서는 교수로 키울 만한 인재를 세 사람 선정하기로 했는데 내가 졸업성적도 좋았지만 일반대학에서 법학을 했고 전도사로서 평도 좋아 이 중 한 사람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선정된 두 사람은 서울대 종교학과 출신의 박장균, 서울사대 국어교육과를 나온 이정근 등이었다.

우리는 조교생활을 하면서 각자 가르칠 과목을 정했는데, 내가 맡은 것은 ‘전도학’과 ‘목회실습’이었다. 전도사로 활동한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은 셈이다.

난 강의를 좀 새롭게 시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중심의 교육방법을 택했다. 대학과정이지만 마치 대학원 강의처럼 자기가 관심 있어 하는 전도 분야를 글로 써오게 해 발표를 시킨 것이다.

그러자 학생들이 따분해 하지 않고 각자의 전도방법을 재미있어 하며 관심을 보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질문도 받고 대답을 하게 했는데, 이 전도학 수업이 후일 목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여려 명에게서 들었다. 목회실습 과목도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해 각기 교육전도사로 활동하며 갖는 내용을 발표시켰다. 나는 전도학 마지막 강의에서 항상 결론을 이렇게 맺었다.

“여러분, 교회는 지역의 중심(센터)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을 위해 설교하셨고 정신을 위해 교육하셨으며 육을 위해 먹을 것을 주셨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전인구원입니다. 교회 성장에 급급한 교회는 외형은 커질지 몰라도 영향력을 잃고 종국에 무시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목회할 때 24시간 교회 문을 활짝 여시길 바랍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모두 개방하고 나누십시오. 섬기시길 바랍니다. 교회가 주민들의 친근한 이웃임을 느낄 때 저절로 교회로 발길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많이 질수록 높아지고 커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를 교회 안에서만 제한시키지 마시길 바랍니다. 세상과 이웃에 하나님의 권능이 물결침으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앞당길 수 있길 희망합니다.”

전임강사로 강단에 섰지만 강의하면서 내가 계속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신학과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반 학문이 무엇인가 생각하다 심리학을 더 공부하기로 했다. 당시 일반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은 몇 곳 없었는데, 성균관대학원에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안 했기에 전공과목 30학점을 더 하는 조건이었다. 이 공부는 내게 학문의 폭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서울신대가 아현동 시대를 마감하고 경기도 부천 소사동으로 이전했다. 그런데 내게 중요한 임무가 주어졌다. 강의하는 것 외에 기숙사 사감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신학생들은 1학년 때 무조건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이때부터 목회자가 되기 위한 철저한 신앙훈련을 시킨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