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너무 강한 ‘막장’ 양념… 프랑스혁명 푸대접에 뒷맛 씁쓸

입력 2014-11-11 02:35
화려한 의상을 입고 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의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 연극 등으로 수없이 재번역되고 있다. 사치스런 생활로 민중에게 외면당한 그녀는 결국 추악한 말로를 맞는다. 배곯는 민중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비아냥 거리가 된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2006년 일본 도쿄의 임페리얼 시어터에서 초연된 뒤 2009년과 2012년 독일에서 공연된 데 이어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샤롯데시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독일 작가 미하엘 쿤체(71)가 가사를 썼고 헝가리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69)가 곡을 쓴 이른바 ‘오스트리아 뮤지컬’의 대표주자인데, 국내 무대는 원작을 대대적으로 각색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역사적 무게감을 줄이고 대중성을 택했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캐릭터의 비중과 성격에 변화를 줘 국내 관객들만을 위한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출생의 비밀, 불륜, 재벌 등 한국식 ‘막장’ 코드가 180분 동안 촘촘히 박혀 있다는 점은 이 역사적 인물이 가지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이 씁쓸한 이유는 또 있다. 작품은 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대결구도에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배치한다. 굶주림에 거리를 배회하다 혁명을 꿈꾸는 여성인데,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이 겹쳐질 만큼 고귀하다. 마그리드의 파워풀한 목소리와 연기는 연약한 마리와 완벽히 대조된다. 그러나 유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 ‘페르젠 백작과의 사랑’이 마리의 입장에서 그려지다 보니 마그리드가 일구는 프랑스 혁명의 의미가 과소평가되고 개연성도 떨어진다. 작품이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올 연말 기대작으로 꼽힐 수 있을 정도의 볼거리는 지녔다. 화려한 음악과 의상은 18세기 프랑스의 궁정생활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최고의 여자’ ‘운명의 수레바퀴’ 등 40여곡의 넘버는 미하엘-실베스터 조합 특유의 서정성을 배가시킨다.

가장 큰 힘은 캐스팅이다. 여성 투톱이 돋보이는데 ‘가창력 퀸’으로 불리는 옥주현(34), 김소현(39)이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윤공주(33), 차지연(32)이 마그리드 아르노 역할을 맡았다. 내년 2월 1일까지. 5만∼14만원(02-6391-6333).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