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은 누구도 통일을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동서독) 독일인이 완전한 자유를 찾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롤프 마파엘(59) 주한 독일대사는 9일 오전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맞이 행사가 한창인 서울 청계천2가의 베를린광장 인근 카페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베를린광장은 2005년 서울시가 독일로부터 베를린 장벽 원형 일부를 기증받아 조성한 광장이다.
마파엘 대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의 기억에 대해 “무엇보다도 모든 독일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독일 외무부에서 일하던 그는 “통일 소식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고 행운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독일은 그러나 통일의 후유증을 겪으며 한동안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다. 마파엘 대사는 “경쟁력이 없었던 동독 기업들이 파산하는 등 통일 직후 몇 년간은 실제로 어려운 시기였다”면서 “독일 정부가 옛 동독 지역에 신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노동·복지정책 개혁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통일 이전에 서독이 쌓아놓은 산업 경쟁력이 빠른 시간 내에 국내 경제를 추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그는 진단했다. 서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 신연방주(옛 동독 지역)의 도시들은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여전히 두 지역 간 경제 격차가 있지만 마파엘 대사는 “양쪽이 서로 맞춰가는 바람직한 길을 걷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처음 옛 서독 지역에서 신연방주로 이동한 인구가 그 반대의 경우를 앞질렀다”면서 “2019년까지 신연방주 지원정책이 계속될 예정이라 격차가 더 줄 것”이라고 낙관했다.
‘내적 통합’도 문제였다. 옛 동독 정권하에서 정치적으로 탄압받던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는 “동독과 서독 간 괴리 못지않게 동독 안에서의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통독은 유럽의 통합으로도 이어졌다. 마파엘 대사는 “통일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모두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는 점”이라며 “더불어 냉전이 끝나고 유럽이 완전한 통합의 길로 들어서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을 겪었다는 공통점을 가진 한국과 독일은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통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한·독 통일외교정책자문위원회 첫 회의도 열렸다. 마파엘 대사는 “지난해 국민일보가 독일에 대한 연중 기획보도를 해준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해외 언론에서 독일을 그처럼 자세히 다룬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분단과 통일, 그리고 통일 이후 통합과정을 모두 경험한 마파엘 대사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남북 간 밀접한 교류와 접근을 통해 변화를 도출해 내야 한다”면서 “10년, 20년의 장기적 정책이 필요하고 주변 국가의 협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 통일이 핵무기 없이 이뤄진다면 동북아의 평화와 진보를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인구의 3분의 1이 자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건 큰 비극”이라며 “모든 한국인들이 자유 속에서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2012년 한국에 부임한 이후 날로 높아가는 독일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의 경제와 복지제도는 물론 통독 이후 사회통합 과정 등에 대한 강연 요청이 그에게 쏟아지고 있다. 마파엘 대사는 국회의 통일미래포럼 등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는 모임에도 참여해 독일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1955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브루흐잘시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만하임 검찰청에서 검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 외교관으로 변신해 독일 외무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상설대표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에서 근무했다. 독일 외무부 유럽정책조정과장, 유럽국 담당관 등을 맡았다.
임세정 이종선 기자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인터뷰]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 “통일을 비용 문제로 본 독일인 없어…”
입력 2014-11-10 03:41